명품 수선 장인이 만든 명품 장애인 당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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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후 3시께 부산 해운대구 중동 명품 수선점 ‘천사의 손’. 가방과 신발을 보관한 사무실 옆쪽으로 파란색 천이 깔린 당구대가 눈에 들어왔다. 널찍한 공간에 띄엄띄엄 놓인 당구대가 모두 5대. 바닥에 깔린 카펫까지 수선점 반쪽은 그야말로 당구장으로 꾸며진 상태였다.

이날 당구대 3대는 1명씩 차지하고 있었다. 휠체어를 탄 2명은 당구봉을 들고 3구 연습에 한창이었다. 당구공이 이동하는 위치에 따라 부지런히 휠체어 바퀴를 굴렸다. 나머지 1명은 다리가 불편해도 서서 교습을 받았다. 자세부터 힘 조절까지 모두 진지한 태도로 임했다.

해운대 ‘천사의 손’ 운영하는 한택주 씨
수선점 창고 고쳐 ‘1004당구클럽’으로
장애 선수도 눈치 안 보고 훈련할 공간

명품 수선점 안 당구장 이름은 ‘1004 당구클럽’. 지난 9일 문을 연 장애인 전용 당구 훈련장이다. 20년 이상 역사를 자랑하는 ‘천사의 손’ 대표이자 지체 장애로 휠체어를 타는 한택주(55) 씨가 4000만 원을 들여 만들었다. 한 씨는 “하루에 제품 50~60개 정도 수선하는데 가게가 큰 편이었다”며 “창고로 활용하던 공간을 세줄까 고민하다 결국 당구장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한 씨는 장애인들이 편하게 연습할 공간을 만들기 위해 수선점 창고를 당구장으로 바꿨다. 부산시 장애인 선수위원장을 맡은 한 씨를 포함한 많은 선수가 당구장을 옮겨 다닌 ‘떠돌이 신세’였기 때문이다. 한 씨는 “부산에 등록된 선수 16명 중 휠체어를 타는 8명은 연습을 하려면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며 “옆쪽 당구대에 손님을 받기도 어중간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장애인 전용 훈련장을 꾸준히 찾는다. 하루 5000원, 월 5만 원으로 요금이 비교적 저렴한 이유도 크다. 한쪽에는 선수들이 앉아 쉴 수 있는 매트리스도 놓여 있다. 스탠딩 종목 선수인 이명순(57·여) 씨는 “다른 선수가 공간을 많이 차지해도 여기서는 눈치를 주지 않는다”며 “마음 편히 훈련할 수 있다”고 밝혔다. 훈련장 관리인이자 선수인 이승환(46) 씨는 “요금도 저렴해 경제적 부담도 덜하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에는 장애인 전국체육대회 부산 1차 예선전도 이곳에서 진행했다. 전에는 돈을 내고 당구장을 빌려야 했지만, 이번에는 한 씨가 무료로 장소를 제공했다. 한 씨는 “올해는 전국체육대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며 “부산에서 5~10명이 선발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19년에 17개 시·도 중 15위를 했는데, 올해는 훈련을 통해 성적을 높이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한 씨를 포함한 선수들은 좋은 성적을 내려면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씨는 “당구 지도사 자격증을 갖춘 관리인을 고용하기 위해 사업자등록증을 냈는데 부산시장애인체육회는 우리가 영리업체라 지원이 어렵다고 하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휠체어 종목 선수인 임성훈(53) 씨는 “당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 장비 구입 지원도 열악하다”며 “부산시는 당구대 약 10대를 갖춘 사직동 당구장도 운영비 보조가 없다며 문을 닫아 놨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우영 기자 ver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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