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컴백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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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대표

모 방송의 예능 프로 이름이기도 하지만, 서태지와 방탄소년단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말, 컴백홈. 컴(come), 백(back), 홈(home) 셋으로 분리해 보아도 어느 하나 사람의 마음 건드리지 않는 말이 없으니, 이 조합어는 매우 강력한 감성 언어다. 특히 홈(home)의 시청 흡인력은 대단해 집을 주제로 한 TV 프로가 호황을 이루고 있다. ‘집’, ‘구해줘 홈즈’, ‘바퀴 달린 집’, ‘나의 판타집’…. 일컬어 ‘주거 예능’은 인기가 많다.

이 프로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타인의 생활을 들여다보면서 나의 생활과 연관시키는 현실적인 흥미가 큰 몫을 한다. 집은 매일 돌아와야 하는 장소이다. 그러므로 그곳의 안온과 편리는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둥지의 꾸밈은 동물적 본능이다.

집을 주제로 한 TV 프로 인기
나와 연관 현실적인 흥미 큰 몫
집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도 작용

새 떼의 귀환, 아버지의 낙향
이 심정 아는지 모르는지
양산 하북면 현수막은 나풀거린다

또 다른 이유는 집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것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 그리움은 자신을 잉태한 어머니의 아기집으로부터 출발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집’이라는 말은 늘 따듯하고 깊고 뭉클하다. 어쩌면 평생을 따라다닐 운명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물며, 그러한 집(home)이 컴(come)과 백(back)과 합쳐진다면? 컴백홈의 열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강력하다.

오래전 어느 저녁 무렵, 울산 태화강에서 떼까마귀의 귀환을 기다린 적이 있다. 일시에 하늘을 덮은 새의 귀환은 큰 볼거리였다. 나는 귀환이라는 거창한 말로 새의 행동에 놀라움을 표했건만, 새의 입장에선 단지 컴백홈 중이었을 테다. 먹이 짓이 일과의 대부분이었을 새가 하루에 한 번씩 시간을 맞추어 이곳으로 돌아오는 지극히 본능적인 행동. 노곤한 노동 뒤의 휴식과 새 에너지의 충만을 위한 장소. 거기로 새는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지친 날개를 마침내 접을 수 있는 대숲을 바라보면서 새의 하루를 위로했다.

더 오래전의 일이다. 내가 대학에 다닐 무렵, 아버지는 낙향하셨다. 겨우 100여 평의 대지와 전답 두어 개를 새로 사 직접 집을 지으셨다. 물론 군청에 신고하셨겠지만, 전적으로 대학생인 나의 엉성한 설계도에 근거해 집을 지으셨다. 미처 가재도구를 준비하지 못하셨을 부모님께 동네 사람들이 밥과 반찬을 매끼 준비해 주고, 한여름 땡볕에 십시일반 땀을 훔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작은 정이 모이고 모여 집은 내 설계도보다 훨씬 훌륭하게 지어졌다. 그리고 그 집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사셨다. 기억해 보니 나의 삶에서도 그런 아버지를 만나러 가던 행로가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 아니었나 한다.

내친김에 더 거슬러 오른다. 아시다시피 ‘귀거래사(歸去來辭)’는 중국의 시인 도연명의 산문시이다. 13년간에 걸친 관리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드디어 향리로 돌아가서 이제부터 은자로서의 생활로 들어간다는 선언(宣言)의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돌아가련다. 전원이 바로 거칠어지려는데 아니 돌아갈쏘냐(歸去來兮 田園將蕪 胡不歸)’라고 읊조리고 있다. 이른바 천재 시인의 컴백홈 선언이다.

그리고 현재, 양산시 하북면 어느 어귀에서 불민하게도 명문의 글을 동음이의어로 패러디하게 됨을 시인께서는 용서하시라. 당사자인 그분께서도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歸乞哀事(귀걸애사). 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어찌 이토록 험하고 슬픈가? 그분은 또 어찌 말씀이 없으신가? 일찍이 성품과 행로를 알기에 그러한 인내와 침묵은 더 아린다.

이즈음에 새의 귀소와 내 아버지, 그리고 시인을 떠올리는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일의 근원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도리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산시 하북면에 붙은 현수막이 나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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