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무용지물 전자발찌, 법무부 존재 이유 생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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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랑 사회부

전자발찌는 그저 발목에 묶여 있기만 했다. 성폭행범의 재범을 막지 못한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두웠지만, 국가는 엉뚱한 변명만 늘어놨다.

강간 미수로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받은 20대 남성이 자기 집에서 100m 떨어진, 여성이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가 성폭행을 저질렀다. 용의자의 범행 행태를 찬찬히 살펴보면 ‘거주지 근처에 머무는 것은 특이사항으로 보지 않는다’는 법무부 관리시스템의 허점을 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자발찌 경보는 울리지 않았고 그 사이 또 다른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다.

일용직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용의자는 지난 12일 외출금지시간인 오전 6시가 지나자마자 부산 동래구 집을 나섰다. 판결에 따라 이 남성은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외출을 못 한다. 평소라면 이 시간대에 나와 근무지로 향했을 테지만, 이날은 집 근처 피해자 집으로 들어갔다. 이때가 6시 10분께. 1시간 넘게 피해자를 기다렸다. 귀가하는 피해자를 성폭행한 뒤 경찰이 현장에 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는지 범행장소 인근에 머물렀다. 경보는 이때도 울리지 않았다. 그는 택시를 타고 인접 지역으로 이동했다. 경찰이 용의자를 추적하기 시작했지만 이때도 피해자 신고를 통해서였다. 용의자는 경찰이 자신을 뒤쫓는다는 것을 눈치채고 전자발찌를 끊었다. 법무부의 시스템은 그제서야 작동했다.

전자발찌 부착자의 재범 수치는 법무부를 향해 끊임없이 소리친다. 거주지 근처 용의자의 동선에 제발 주목하라고. 최근 5년간 전자발찌를 부착한 성범죄자의 재범 가운데 절반 이상이 본인의 집 반경 1km 안에서 일어났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같은 문제가 제기됐다. 법무부는 거주지 인근에 전자감시 대상자가 머무는 건 일반적이라며 특이 동선으로 볼 수 없다고 한다. 항상 근무지로 향하던 용의자가 2시간 넘게 머물렀는데도 말이다. 법무부는 보도자료에서 ‘22:00~06:00까지 외출제한명령이 부과된 자로서, 사건 당일 06:08경 주거지를 벗어나 인접 구로 이동한 사실은 준수사항 위반이 아니다’고 발표했다. 외출제한시간 외에는 전자발찌 모니터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사실상 시인한 셈이다.

용의자들은 이 점을 노린다. 법무부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우린들 어쩌겠느냐’는 듯한 태도다. 추가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큰 범죄자를 사회에 내보내는 공무원들의 태도가 이 정도밖에 안 될까. 이제 전자발찌를 찬 범죄자 가까이에 사는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법무부의 해명을 종합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정의를 위해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쏟아낸다. 하지만 엉성한 범죄자 사후 관리 탓에 국민들은 불안에 떤다. 법무부 존재의 가장 큰 이유는 생활의 안정과 인권보호다. 이 시점에서 법무부는 존재 이유를 되새겨야 한다.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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