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 908 >아쉬워라 표준사전(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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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원칙이나 일관성이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고지식하다거나 갑갑하다고 여길 독자도 있으실 터. 뭐,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원칙이나 일관성이 흔들리면 안 되는 분야가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사전 편찬. 특히 ‘국어사전’을 펴내면서 원칙 없이 이리저리 흔들린다면 언중의 말글살이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전 또한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고열: 몸의 높은 열. 섭씨 39.6도에서 40.5도 사이의 열을 이른다.(독감에 걸려 고열로 신음하다./밤새 고열이 나서 온몸이 덜덜 떨렸었다./감기에 걸려 며칠 동안 고열에 시달렸다.)

*동결점(凍結點): 물이 얼기 시작할 때 또는 얼음이 녹기 시작할 때의 온도. 1기압 아래에서 섭씨 0도를 이른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사전) 뜻풀이인데, 여기서 눈여겨볼 표현은 ‘섭씨 39.6도, 섭씨 0도’다. 다시 표준사전을 보자.

*영상(零上): 섭씨온도계에서, 눈금이 0℃ 이상의 온도.

*켈빈온도: 물질의 특이성에 의존하지 않고 눈금을 정의한 온도. 영하 273.15℃를 기준으로 하여, 보통의 섭씨와 같은 간격으로 눈금을 붙였다. 단위는 켈빈(K). =절대 온도.

보다시피, 여기서는 ‘0℃, 273.15℃’로 썼다. 물론 ‘섭씨 100도’나 ‘100℃’가 같은 뜻이기는 하지만, 한 가지 방식으로 통일해 쓰는 게 좋을 터.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표준사전을 다시 보자.

*킬로: 국제단위계에서 질량의 단위. 1기압 섭씨 4℃에서 한 변의 길이가 10cm인 정육면체의 물의 질량에서 유래하였으나, 현재 국제 도량형국에 보관된 킬로그램 원기의 질량으로 정의한다. 기호는 kg. =킬로그램.

*켈빈: 절대 온도의 단위. 1기압에서 물의 어는점 섭씨 0℃는 절대 온도 273.15켈빈으로 나타내며, 끓는점 섭씨 100℃는 절대 온도 373.15켈빈으로 나타낸다. 기호는 K.

여기서는 ‘섭씨 4℃, 섭씨 0℃’식으로 썼는데, 이러면, 표준사전이 온도를 표시하는 방식은 모두 3가지라는 얘기다. 게다가 ‘섭씨’와 ‘℃’는 중복이기도 하다.(이런 중복은 ‘킬로그램, 금아말감, 작열’ 뜻풀이에도 나온다.) 표기 원칙 없이 왔다 갔다 한 데다 깔끔하지 못한 중복 표현까지 쓴 것. 자, 이러면 표준사전에 대한 신뢰는 과연 몇 점쯤 될까. 사전을 만들면서 이 정도도 거르지 못했고, 그게 20년 넘게 그대로라면, 국립국어원은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걸까. 하도 답답해서 해 보는 푸념이다.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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