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묻다] “목숨도 하청준 건 아닌데…” 대기업이 외면한 죽음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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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
고공 작업 중 추락사 손현승 씨

지난해 부산 해운대구의 한 호텔 연회장에서 현수막 설치작업 중 리프트에서 추락해 숨진 손현승(왼쪽) 씨와 형 손봉수 씨가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유족 제공 지난해 부산 해운대구의 한 호텔 연회장에서 현수막 설치작업 중 리프트에서 추락해 숨진 손현승(왼쪽) 씨와 형 손봉수 씨가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유족 제공

아침 일찍 출근한 동생은 그날 손을 쓸 수도 없을 만큼 망가진 채 돌아왔다. 그리고 뇌사상태에 빠졌다.

대학병원 흉부외과 전문의인 형은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오가는 동생을 지켜볼수 밖에 없었다. 형은 동생의 상태를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설명했다. 환자에게는 수없이 해왔던 일이지만, 살면서 가슴이 가장 저렸던 날이었다고 했다.

형은 가족에게 장기기증을 제안했다. ‘작은아들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던 부모님은 가슴을 부여잡고 장기기증에 동의했다. 어렵고 아픈 결정이었다. 그렇게 동생은 3명에게 새 생명을 주고 눈을 감았다. 형은 동생의 사고를 ‘모두가 외면한 죽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이 외면한 동생의 죽음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호텔 현수막 설치하다 추락

뇌사 2주 만에 세상과 이별

안전 관리 못 한 원·하청 업체

책임 미뤄 발생한 산업재해





“목숨과 안전도 하청을 주듯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책임지는 이 없는 죽음은 누구의 몫입니까.” 지난 6일 오후 7시 양산부산대병원에서 만난 대학 흉부외과 교수 손봉수(42) 씨의 말이다. 손 씨는 지난해 10월 30일 부산 해운대구의 한 호텔 연회장에서 현수막 설치작업을 하던 중 리프트에서 추락해 숨진 손현승(39) 씨의 형이다.

손 씨는 현수막 설치 업체에서 10여 년간 일한 베테랑 직원이다. 사고가 나던 그 날은 호텔 연회장 행사를 위해 가로 7m, 세로 5m 규모의 대형 현수막 설치 작업을 맡았다. 호텔 측이 제공한 리프트를 타고 작업을 하던 손 씨는 그만 6m 높이에서 추락했다. 뇌출혈 등 뇌 손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진 손 씨는 병원 치료 중 뇌사상태에 빠졌다. 그는 그렇게 2주 뒤 세상을 떠났다.

손 씨는 부모님에게 착한 아들이자, 바쁜 형을 대신해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준 고마운 동생이었다. 출장이 잦은 일을 하면서도 힘든 내색 없이 씩씩한 모습으로 늘 가족을 우선시하던 손 씨였다. 손 씨의 형은 “동생은 집에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가족이었다”며 “연로한 부모님도 많이 의지했고 그런 동생에게 심적으로 많이 기댔다”고 회상했다.

그런 손 씨가 중환자실로 옮겨지면서 가족의 일상은 한순간 멈췄다. 병원에서 근무를 하던 손 씨의 형은 전화를 받곤, 곧바로 동생이 있는 해운대백병원으로 달려갔다. 위급한 환자를 자주 봐오던 손 씨였지만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는 건 쉽지 않았다.

가족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지만, 전문의로서 동생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쉽지 않겠다”였다. 담당 의사의 소견도 마찬가지였다. 장기기증은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렇게 손 씨는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게 새 생명을 주고 김해 낙원공원에 안치됐다.



동생 손현승 씨를 떠나보낸 손봉수 씨는 “중고 오디오를 좋아하던 동생 방에 들어가면 동생이 꼭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있을 것만 같다”고 말했다. 곽진석 기자 kwak@ 동생 손현승 씨를 떠나보낸 손봉수 씨는 “중고 오디오를 좋아하던 동생 방에 들어가면 동생이 꼭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있을 것만 같다”고 말했다. 곽진석 기자 kwak@

손 씨는 “동생이 세상을 떠나고 가족의 일상은 엉망이 됐다. 연로한 어머니는 아직도 버스를 타고 낙원공원으로 가 밤이 올 때까지 가만히 앉아있다 온다”며 “지금도 동생 방은 그대로 있다. 중고 오디오를 좋아하던 동생 방에 들어가면 동생이 꼭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있을 것만 같다”고 울먹였다.

사고 이후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호텔 법인과 호텔 관계자, 현수막 업체 대표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별개로 현수막 업체 대표와 업체 직원, 호텔 관계자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노동청과 경찰 모두 고공 현수막 작업 중 관리·감독이 부실했던 점이 손 씨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호텔 측이 작업자에게 리프트 장비를 제공하면서 제대로 된 사용 방법 안내가 없었던 점도 문제가 됐다. 검찰은 곧 기소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 측 변호사는 “대기업 호텔에서 사고가 났음에도 기업 측은 사고에 대한 입장 표명 없이 유족에게 ‘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사과하겠다’고 말하는 등 외면만 하고 있다”며 “애꿎은 근로자가 제대로 된 관리감독 없이 죽음을 맞았는데, 모두가 책임을 피해 그 몫은 모두 유족이 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손 씨의 죽음은 원청과 하청이 서로 안전관리 책임을 미루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전형적인 산업재해다. 이처럼 관리감독 소홀 등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년 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건수는 전국 7689건. 2014년 4519건에 비해 5년 새 3170건(70%)이 증가했다.

사업장에서의 안전 조치 소홀은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지만, 처벌은 여전히 미미하다. 관련법 위반 혐의 1심 판결 중 유기징역은 2019년 재판 705건 중 2건에 그친다. 벌금 등의 재산형이 대부분이다. 피해자 과실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닌, 기업 등 원청 차원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점차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재해 사고에 대해 사업주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내년 1월 시행 예정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숙견 상임활동가는 “그동안 사업자에 관대한 시각으로 안전 문제가 용인됐다. ‘목숨값’이 구조를 개선하는 것보다 싸다는 인식 때문에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있었지만, 이제는 이런 구조가 바뀌어야 할 때다”고 강조했다.

곽진석·탁경륜 기자 kwak@busan.com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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