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 밖 풍경에 속도를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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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해안 드라이브스루 여행

경남 고성 해안도로 드라이브 코스에서 만나는 보석 같은 풍경들. 경남 고성 자란만에 점점이 누운 섬들.

목적지를 찍고 가는 최단거리 여행으로는 보지 못하는 풍경이 있다. 그래서 여정 자체가 드라이브라면 효율적이기보단 낭만적인 여행이다. 사천에서 창원 방향으로 1010번 지방도와 77번 국도를 따라가는 경남 고성 자동차 여행은 청정해역과 포구의 풍경이 눈길도 발길도 붙든다. 차로 달리지만 여간해선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경남 고성 해안도로 일주 코스를 소개한다.

자란만·고성만·동해면 권역 청정해역
1010번 지방도·77번 국도 따라가는 여행
타원형으로 쌓은 소을비포성지가 기점
섬들이 손짓하는 자란만 풍경에 ‘심쿵’
해지개길 일렁이는 윤슬에 마음 빼앗겨
당동만 다랭이논 지나 동진대교서 마무리


■섬들과 나란히 자란만을 달려

상족암 군립공원에서 5분 거리, 호젓한 유적지 소을비포성지가 드라이브 코스의 시작이다. 소을비포성지는 조선 전기에 왜구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된 소을비포진이 있던 곳으로, 바다를 보고 있는 구릉 8부 능선에 해안 경사를 따라서 타원형으로 쌓은 성곽이 남아있다. 작은 성문으로 들어서면 무성한 수풀 주위로 석축이 200m 정도 둘레를 빙 둘러싸고 있고, 석축 위에 오르면 좁은 내만 포구가 내려다보인다. 갯벌에는 바지락이며 쏙을 잡는 사람들이 점점이 흩어져있다. 동화어촌체험마을에 갯벌체험을 하러 온 가족들이다.

하일면 동화마을에서 삼산면 포교마을까지가 둥그렇게 파고든 자란만이다. 동화어촌체험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마을 아래로 펼쳐지는 자란만의 풍경은 말문이 막히게 근사하다. 호수같은 잔잔한 바다에 자란도를 필두로 만아섬, 육섬, 목섬, 솔섬, 밤섬 같은 작은 섬들이 커브를 돌 때마다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한다. 솔숲으로 뒤덮인 기다란 기차 모양 솔섬이나 작은 산 모양 목섬은 물이 들고 나면 뭍과 연결되기도 한다. FDA 공인 패류 청정해역인 자란만의 특산물 굴 양식장도 풍경의 일부다. 가까이로는 나뭇가지에 치패를 붙인 모양, 먼 바다에는 줄줄이 떠있는 흰색 부표가 모두 굴 양식장이다.

1010번 지방도는 초보 운전자라면 긴장이 될 만큼 구불구불 커브를 반복하지만 풍경 때문에라도 속도를 낼 마음은 들지 않는다. 중간중간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어봐도 2차원으로는 재현이 안 된다. 1010번 지방도는 삼산면에 접어들어서 잠시 끊기고 77번 국도로 이어진다. 삼산보건지소 앞에서 다시 남쪽으로 지방도가 연결되는데, 앞서는 마을 아래로 물러났던 바다가 여기서는 차창 옆으로 바싹 다가선다.

도로와 나란한 바다에서는 섬들도 가깝다. 그 중 보리섬에는 룡대미어촌체험마을이 놓은 작은 다리 대보교로 걸어들어갈 수도 있다. 수제비 반죽을 똑똑 떨어뜨린 것만 같은 작은 섬들은 괴암섬, 나비섬, 문래섬 같은 어엿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가장 남쪽에는 포교마을의 포교항이 나타난다. 솔숲과 마을집 풍경이 그대로 비칠 만큼 깨끗하고 잔잔한 바다에 어선들이 두세 척씩 어깨를 붙이고 떠있는 모습이 지중해 어디 그림엽서 같다. 포교항에서는 봄이면 도다리, 5월부터 가을까지는 하모가 잡힌다. 낚시 예능프로그램 ‘도시어부’가 두 번이나 촬영을 다녀갔다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고성만의 해지개다리를 건너

섬들에게 인사하고 온 길을 되돌아 올라가서 삼산보건지소에서 잠시 77번 국도를 타면 다시 1010번 지방도다. 이번에는 자란만보다 좁고 긴 모양의 고성만이다. 삼산면 두포리에서 고성읍 신월리, 통영 바로 전까지 이어지는 이 구간에는 이름이 있다. 국토교통부가 남해안 해안경관도로 15선 중 하나로 선정하면서 해지개길이라고 붙였다. 바다와 나란히 달리다보면 남포항이 나타난다. 제방공사를 할 때 토사를 운반하던 철길이 있어서 여기 사람들은 ‘철뚝’이라고 부르는 국가어항이다. 전망 좋은 카페나 횟집들이 여럿인데 고성군이 유스호스텔도 짓고 있다.

남산공원 오토캠핑장을 지나면 해지개길의 하이라이트 해지개다리다. 고성만의 가장 오목한 곳에 해안선을 따라서 편도 1.4km 도보 다리를 세웠는데, 콘크리트 구간과 목재 덱 구간이 연결돼있다. ‘해지개’는 ‘해질 무렵 황금빛 바다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난다’는 의미라고 한다.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는 오후 시간부터 윤슬이 일렁이기 시작하고, 신부마을 갯벌에 물이 빠지면 다리 오른쪽은 바다, 왼쪽은 갯벌이 된다. 너비가 좁아지면서 좀 더 오붓하게 걸을 수 있는 목재 덱 구간을 따라가면 끝에는 터널 모양 하트 조형물이 기다리고 있다. 어둠이 내리고 보랏빛 조명이 켜진 다리를 걷는 것도 낭만적이다.

고성읍에서 드라이브 코스의 마지막인 동해면으로 가려면 거류면을 지나야 한다. 북쪽으로 곧바로 1010번 지방도를 타면 동해면 북쪽, 1009번 지방도로 내륙을 관통해서 가면 77번 국도로 동해면 남쪽 해안가를 달릴 수 있다. 후자를 택하면 거류산과 엄홍길전시관을 들를 수 있다. 엄홍길전시관은 고성 출신의 산악인 엄홍길의 히말라야 16좌 등반 과정을 전시한 곳이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전시관은 휴관인데도 주차장이 제법 차 있다. 정상까지 2시간 정도가 걸리는 고성의 명산 거류산 등산로와 연결되고, 전시관 뒤에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놀 수 있는 체육시설과 잔디공원도 훌륭하게 조성돼있다.



■당동만을 지나 동진대교까지

거류산 정상에서 보는 당동만 다랭이논은 사진가들이 사랑하는 풍경이다. 77번 국도는 짧은 당동만을 돌아서 3면이 바다인 동해면의 아래쪽을 따라간다. 조선특구로라는 이름에 걸맞은 조선소 풍경과 어촌 마을, 논밭 풍경을 스쳐가면 고성군 동해면과 창원시 마산합포구를 잇는 동진대교로 이어진다. 이 중에서도 동해면 양촌리에서 외산리 동진대교까지 이어지는 구간이 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고성의 대표 드라이브 코스다. 이 구간에서는 동해면 해맞이공원과 내신어촌계회관 인근이 뷰포인트다.

해맞이공원은 고성읍 남산공원과 함께 고성군의 일출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고성의 트레이드마크인 공룡 조형물 주위로 팔각정과 벤치, 바다로 몸을 내민 전망대과 목재 덱 산책로가 곳곳에 조성됐다. 지금까지 내내 만으로만 보던 바다는 여기에서 탁 트인다. 날씨가 좋으면 거제도와 멀리 부산 가덕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전망대에는 카메라를 올려두고 360도로 회전해서 촬영할 수 있는 거치대가 있는데, 조선소 풍경부터 하늘과 맞닿은 너른 바다, 바다 위에 흰점으로 흩뿌려진 바다농장과 소나무는 어딜 봐도 그림이다. 크지않은 도로변 공원인데도 캠핑 의자를 펼치고 앉은 사람들이 있다.

동진대교로 가기 전에 다시 속도를 늦추게 하는 풍경을 만난다면 거기가 내신어촌계회관 인근이다. 오목한 포구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들고 서면, 해안도로 커브를 돌아 나타난 자동차와 바이크가 얕은 바다에서 잠자고 있는 배들을 배경으로 휙휙 지나서 다시 반대편 커브길로 사라진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 시동을 걸면 금세 동진대교다. 대교라는 이름이 무색한 왕복 2차로 390m 다리를 건너면 창원. 여기에서 더 달리고 싶다면 저도연륙교까지 이어지는 창포해안길이 있다.


■고성 여행 팁

경남 고성군 하일면 소을비포성지에서 동해면 내산리 동진대교까지 1010번 지방도와 77번 국도를 따라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는 총 71km 남짓 된다. 동해면에서 아래쪽 77번 국도 대신 위쪽 1010번 지방도를 택하면 약간 단축된다. 삼산면 포교항으로 가는 길은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최단 구간 대신 여정에 보리섬을 끼워서 꼭 바닷길로 달릴 것을 추천한다. 상족암군립공원이나 문수암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여행하거나 반대로 창원 방면에서 사천 방면으로 가는 길에 이용해도 괜찮다. 도중에 통영으로 빠져도 된다.

달리는 시간만 하면 2시간이 채 못되지만 중간중간 들렀다가 가려면 하루로는 모자랄 수도 있다. 자란만 구간에서는 학동마을옛담장, 고성만 구간에서는 송학동고분군으로 들어설 수 있고, 동해면에서는 바다 건너 회화면의 당항포관광지가 가깝다. 카라반 사이트까지 갖춘 해지개다리 옆 남산공원오토캠핑장을 비롯해 고성 곳곳 경치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캠핑장이 있다. 공식 캠핑장이 아닌 곳에 텐트나 캠핑 테이블을 펼친 사람들도 많다. 하일면 임포항, 삼산면 포교항, 고성읍 남포항 등에는 횟집촌이 있다.

글·사진=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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