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어제 -하나의 절망이 가고 하나의 절망이 흘러오던 / 안민(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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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못한 어둠마다

폭우가 쏟아졌다

비는 포말이 되어 끓었고

그러한 어둠 저편,

사자死者가 버린 눈알 속에서

내 어린 날,

눈물 흘러가는 게 보였다

말보다 울음을 먼저 배웠던 게

금번 생에서의 가장 큰 실패,

한 번 흐느낄 적마다

누군가의 손에 끌려

먼 대륙의 우기에 다시 또 다녀와야 했다

띄워 보낸 종이배 행방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시집 (2018) 중에서-


‘별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라는 시가 있었다. 별의 존재와 어둠의 존재는 공존 관계이다. 생성과 소멸도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희망의 뒷면에는 늘 절망이 있어서 희망의 원인이 때로는 절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다가올 내일이 불투명하고 무서우면서 밤을 맞이하는 자들에게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수면의 두려움은 곧 죽음의 공포이다. 수면 속에서 맞이하는 화려한 꿈은 죽음 이면에 숨어있는 절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절망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문학이다. 기호의 능력으로 시작된 문자가 상징의 능력을 가졌다가 은유라는 이름으로 삶을 재구성할 때 시는 탄생된다.

‘너의 전생은 흐린 나무’라고 표현하는 시인의 상상력은 절망의 화려한 변신이다. 어둡고 괴로운 삶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인의 상상력이 불꽃처럼 날아다닌다. 문자보다 먼저 말이 있었고 말보다 먼저 울음이 있었다. 이규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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