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대한민국의 이준석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논설위원

“싸이 원래 네 모습으로 돌아가라!”

2012년 세계 시장에서 빅히트를 치며 ‘강남스타일’을 한국의 대표 상품으로 만들었던 가수 싸이. 마약 복용에 이어, 대체복무를 성실히 하지 않아 한국 남성이 꿈에서도 상상하기 싫은 군대를 두 번 가는 시나리오를 밟는다. 군 제대 직후인 2010년 한국 3대 연예기획사인 YG 양현석 대표와 전속계약을 맺은 싸이는 사고 치지 않고, 점잖은 티(?)를 내기 위해 차분한 노래로 재기 앨범을 준비했다. 그 모습을 보던 양현석의 주문은 “싸이답지 않다. 얌전하지 마라. 어른스러워지지 마라”였다. 양현석은 싸이가 또래 30대 중반의 평범한 가장 모습을 보여 주는 음악을 하는 것은 ‘몸에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고 느꼈다. 조언을 받아 들인 싸이는 망가지는 몸짓에 풍자와 똘끼가 가득 담긴 ‘강남스타일’을 발표했다. 결국, 싸이는 가장 싸이스러울 때 세계를 춤추게 했다.

싸이스러움이 세계를 춤추게 해
정치판 ‘장유유서’는 줄 세우기 구태

산업화, 민주화 세대 증오 끝내고
‘미래와의 싸움’으로 정치 거듭나야

70~80년대 사고에서 변화 시작돼
‘자신만의 메시지로 세상과 공감하라’


2012년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서 세계인이 말춤을 추던 즈음 정계에 입문한 36세 이준석이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오는 11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헌정 사상 최초로 ‘30대 당 대표’ ‘0선 당 대표’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준석’에게 환호하는 이유는 한국 정치가 ‘과거와 과거의 싸움’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또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절실함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준석’이 따라야 할 성공 모델은 ‘너만의 목소리를 내라’는 싸이일 듯하다. 과거 틀에 갇혀 ‘장유유서’를 강조하는 후진적인 한국 정치판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대권 후보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이준석에게 훈수한 ‘장유유서’는 ‘어른과 아이, 상하의 질서와 순서가 흔들리지 않고 반듯하게 유지되어야 올바른 사회가 유지된다’는 뜻이다. 산업화 세대 연령대에 민주화 세대 가치 체계를 가진 정 전 총리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익숙한 풍경이다. 공천권을 쥐고, 선수만 높은 국회의원 뒤로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사무장, 정치지망생까지 고개를 숙이고 줄 서서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이 한국 정치판 ‘장유유서’이기 때문이다. 권위와 서열, 과거에 집착한 한국 사회에서 취업과 부동산, 결혼 문제로 시름하고 있는 20~30대는 숨 쉴 공기조차 희박하다.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이준석들’은 군부독재와 586 민주화 세대의 투쟁이 끝나는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났다. 이들은 ‘우리는 정의롭고 너희는 부패했다’는 민주화 세대와 ‘전쟁의 폐허에서 이룬 경제적 부는 우리 피땀으로 이룬 것이다’는 산업화 세대에게 아무런 부채가 없다. 그런 이유로 ‘이준석 신드롬’은 산업화, 민주화 세대를 밟고 넘어서 ‘미래와 미래가 경쟁하는 새판을 짜라’는 국민의 바람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세대로 나뉜 우리 정치권은 자신들의 50년, 30년 전 경험과 가치만을 내세워 상대방을 증오하는 싸움으로 일관했다. 그 증오는 국민 개개인의 삶이나 가치는 반영하지 않은 채 사회 각 영역으로 확산돼 다양한 갈등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이준석 돌풍은 과거 세대의 ‘변화 없음, 비전 없음, 내로남불’에 국민들이 느끼는 실망과 분노의 표출이다.

오는 11일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열린다. 이준석이 당권을 잡든 못 잡든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미 이준석으로 인해 한국 사회가 70년대식 사고, 80년대식 이념 투쟁에서 벗어나 변화의 걸음마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이준석들’에게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네 스타일로 대한민국을 춤추게 하라’는 신호탄이 쏘아 올라졌다.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K팝 역사에서도 싸이에 이어 방탄소년단(BTS)이 세계 음악계를 제패하고 있다. 거대한 팬덤 문화를 형성한 BTS는 뮤직비디오나 노래 가사에 세상에 전하고 싶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담아 팬들과 공감한다. 부정적인 현실을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고통과 문제에 맞설 수 있는 해결책”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세상에 던져 언어와 인종, 국가를 뛰어넘는 공감을 끌어냈다. 한국 정치인이 배워야 할 공감과 성공의 업그레이드 된 모델이다.

이준석은 정치 입문 100일 만인 2012년에 펴낸 에서 “정치를 하려는 젊은이들이 현재 시류가 그렇고 대중이 좋아한다고 해서 자신을 인위적으로 그 틀에 맞추려 하지 말고 스스로 정말로 잘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분야에서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라”고 말했다. 9년 전 이준석이 가졌던 그 생각이 유효하기를 빈다. 사람들이 그를 지지하는 이유는 “잘해서가 아니라, 달라서”이기 때문이다. “원래 네 모습으로, 네 메시지를 던져서, 세대를 뛰어넘어 세상과 공감하라!” 2021년 6월,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이준석들’에게 던지는 주문이다. pete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