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역균형발전 찬물 끼얹는 프로농구 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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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철 스포츠부장

1997년 2월 프로농구가 출범했다. 그 시절, 농구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부산을 연고로 한 프로농구단은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팀 명칭은 당시 가장 빠른 핵추진 항공모함인 엔터프라이즈에서 따왔다. 특히 기아는 엔터프라이즈가 연고지인 해양도시 부산의 이미지를 잘 나타낸다고 선정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부산 기아에는 허재와 강동희 등 국내 최고의 농구 스타들이 포진했다. 사직실내체육관에서 경기가 열리면 1만 명의 관중이 몰려들었다. 기아는 프로농구 원년 우승에 이어 최고의 팀으로 성장했다. 기아는 길거리 농구대회 등 다양한 연고지 행사를 개최하며 팬들의 사랑에 응답했다.

프로농구 KT ‘탈 부산’ 결정 씁쓸
2001년 기아 이어 또 부산팬 배신
지방홀대·수도권집중화 병폐 재연
팬심 무시한 ‘경제논리’ 경계해야

하지만 기아는 4년 뒤 부산팬들을 배신했다.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는 2001년 2월 연고지를 울산으로 옮겼다. 이유는 홈구장인 사직실내체육관의 사용료가 비싸고, 부산시가 경기장 시설 보수 등을 적극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부산 팬들은 농구열기가 어느 곳보다 뜨거운 부산을 떠나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분노했다. 하지만 이런 여론에도 불구하고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이름은 울산 기아 엔터프라이즈(현재 울산 모비스)로 변경됐다.

그렇게 ‘제2의 도시’ 부산은 지역 연고 프로농구팀도 갖지 못한 도시로 전락했다. 후유증은 심각했다. 그때 부산시민들이 느꼈던 박탈감, 기아에 대한 불쾌감은 쉽사리 사그러들지 못했다.

2003년 11월 부산은 새로운 프로농구 연고 구단을 갖게 된다. 당시 전남 여수를 연고로 한 여수 코리아텐더가 팀 해체 위기에 몰리면서 부산으로의 연고지 이전을 추진했다. 코리아텐더가 해체될 경우 구단 감소로 인해 프로농구의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부산시와 부산 농구계 등도 이런 사정을 감안, 연고 이전을 지원했다. 부산 코리아텐더는 연고 이전 직후 이동통신 회사인 KTF(현재 KT)에 인수됐다. 당시 KTF는 “부산시민에게 즐거움을 주는 프로농구단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혀 부산시민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부산 KTF(현재 부산 KT)가 경기를 할 때면 팬들이 ‘부산갈매기’를 합창하며 응원했다.

그러나 부산 KT도 부산을 떠난다. 한국프로농구연맹은 9일 임시총회·이사회를 열어 부산 KT가 상정한 연고 이전 신청 안건을 통과시켰다. KT는 이제 수원으로 연고를 옮겨 수원 KT로 변신할 계획이다. KT가 내세운 연고지 이전 이유는 여러가지다. 사직실내체육관 사용 문제, 훈련장 신축 등의 문제를 놓고 부산시와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의 지원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기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때문에 관중 수입이 줄고, 구단 재정이 악화된 것도 주된 이유로 관측된다.

결국 돈 문제인 것이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조금 더 명확해진다. KT는 현재 수원에 훈련장, 숙소 등을 갖고 있다. 사용료를 지불하거나 훈련장을 지을 필요가 없으니 예산을 많이 아낄 수 있을 것이다. 선수단의 주거지가 대부분 수도권이라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다. 수도권으로 옮기면 부산보다 더 많은 농구팬을 확보, 입장 수익이 개선된다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다가 그동안 KT는 홈경기 때만 부산으로 내려왔을 뿐 사실상 수원을 거점으로 구단을 운영했다. 부산과는 서류상 부부였을 뿐, 사실상 별거 상태라고 오판하며 이전 결정을 강행했을 가능성도 높다.

KT의 탈부산을 지켜보면서 구단을 운영하는 기업과 스포츠 팬들의 관점에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물론 기업들이 돈을 벌기 위해 스포츠구단을 운영한 것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최근 들면서 수익을 내지 못한 채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스포츠 종목을 대하는 기업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골치 아픈 분야는 빨리 정리하거나 실속을 챙기며 운영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초 SK가 프로야구단 SK 와이번스를 신세계에 매각한 것도 이런 흐름의 일환으로 보여진다. 더욱이 KT처럼 그룹 최고 경영자가 오너가 아닌 경우에는 이런 경향이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임기 동안 실적을 창출하기 위해 ‘손익 계산기’에 의존하는 사례가 잦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와 프로 스포츠 기반 붕괴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더욱이 KT의 탈부산은 한국의 가장 큰 병폐인 수도권 집중화와 지방 홀대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병폐를 없애기 위해 부산시와 시민들은 중앙정부에 지방 분권, 지역 균형발전 등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17년 동안 정을 나눈 부산 연고 구단이 부산의 가장 절박한 현안에 되레 찬물을 끼얹는 모습을 지켜보며 씁쓸함을 넘어 허무함까지 느낀다.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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