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건희 미술관’ 비수도권 건립, 지역 한데 힘 모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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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방자치단체장에 이어 부울경 여야 국회의원 39명 전원이 한목소리로 “이건희 미술관 수도권 건립 반대”를 외쳤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지난 8일 국회 소통관에서 시차를 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이건희미술관 부울경 건립과 수도권 건립 계획 백지화를 촉구했다. 한 지역 거대 양당 국회의원 모두가 같은 날 동일한 메시지를 내며 단체행동에 나설 만큼 ‘국립 이건희미술관’ 입지 논란은 국내 문화계의 가장 뜨거운 뉴스가 되고 있다. 봇물 터지듯 나오는 지역의 문화 향유 기회 확대 요구를 정부는 더는 모른 척해선 안 된다. 어느 지역으로 갈 것인가는 그다음 문제이고, 일단 비수도권에서 한데 힘을 모아야 한다.

유치 경쟁 뜨겁다고 성급한 결론 안 돼
수도권 배제 천명한 뒤 공모 진행해야

한국의 수도권 집중 문제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전국 문화시설 2800여 개 가운데 36%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국립 현대미술관 4개 중 3개를 비롯해 미술관은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됐다. 지방은 경제·교육뿐 아니라 문화 향유에서도 소외되고 차별받고 있다. 이제 지역으로 문화 향유 기회를 넓힐 때다. ‘국립 이건희 미술관’만큼은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들어서야 한다는 주장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서울지역 미술계 인사들이 주장하듯 “근대미술품을 한곳에 모아 국립 근대미술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것을 다 가진 서울에서 빠진 한 부분을 채워 구색을 갖추자는 것에 다름없다.

그런데 현직 문화체육부 장관이라는 사람은 어땠는가. “수도권은 많이 볼 수 있는 접근성이 있다” “지방에 둘 경우 엄청난 국고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망발을 일삼았다. 균형 잡힌 국가정책을 추진해도 모자랄 판에 ‘이건희 미술관의 지방 도시 유치는 국고손실’이라니 어이가 없다. 접근성 문제만 하더라도 일본 예술의 섬 나오시마처럼 콘텐츠만 좋다면 사람들은 배를 타고서도 찾아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숱하게 인용하는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역시 마찬가지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까지 찾아가기 쉽지 않지만, ‘빌바오 효과’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랜드마크가 된 미술관 하나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모여들었다.

부울경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럴수록 수도권 배제 원칙을 명확히 하는 게 급선무다. 그다음은 정정당당한 공모 절차를 거쳐서 결과를 도출하면 된다. 유치 경쟁이 뜨겁다고 서둘러 결론을 낼 일은 아니다. 특히 심판 역할이라 할 만한 문화체육관광부는 한 점 의혹 없는 투명하고 공정한 기준으로 미래지향적인 과정을 도출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과열 경쟁을 우려할 게 아니라 최대한 공정하게 평가하면 된다. 지방분권과 국가 균형발전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현 정부의 인식이 이건희 미술관 지역 건립을 통해서도 다시 한번 확인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결과도 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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