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알츠하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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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한국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은 배우 윤정희.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2010)로 칸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지만 10년 넘는 투병 생활로 가족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병세가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 윤정희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유명인들도 꽤 많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1994년 담화문을 통해 병에 걸렸음을 고백한 이후 말년에는 본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이들이 앓은 병은 치매라고도 불리는 ‘알츠하이머’다. 알츠하이머는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이다. 1907년 독일 정신과 의사인 알로이스 알츠하이머에 의해 처음으로 보고된 병으로, 최근 일에 대한 기억력 감퇴를 시작으로 결국에는 모든 일상생활 기능을 상실하고 만다. 발병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단백질이 뇌에 쌓이면서 뇌세포 손상이 일어나는 것이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로 꼽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병세를 늦추는 약 외에 이렇다 할 치료제는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련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알츠하이머는 주요 사망원인이 되기도 한다. 2018년 처음 10대 사망원인에 포함된 이래 사망률은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질병 분석 결과 지난해 70세 이상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 수는 52만 7856명에 달한다.

이런 와중에 지난 7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18년 만에 알츠하이머 신약을 승인했다는 소식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애듀헬름’이란 이름의 이 약은 알츠하이머의 근본 원인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된 신약으로는 처음이다. 알츠하이머 정복을 위한 위대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이 약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다 FDA 승인 이후 자문위 소속 위원들이 승인 조처에 대한 반발로 잇따라 사임하면서 후폭풍도 만만찮다. 환자당 연간 5만 6000달러(약 6200만 원)에 달하는 비싼 비용도 걸림돌이다.

논란이 쉬이 가라앉을 것 같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죽어 가는 일상’ 속에서 생을 이어 가야만 하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승인을 계기로 알츠하이머 신약 개발이 더욱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기억과 추억이 소멸하는 순간순간을 오롯이 지켜봐야 하는 가족의 눈물이 그칠 날이 오기를 바란다. 윤여진 국제팀장 only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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