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12. 간 보면 물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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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평생에 고쳐 못 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송강 정철이 지은 이 시조에 나오는 ‘애닯다’는 이제 ‘애달프다’로 써야 한다. 표준어 규정 제20항 ‘사어(死語)가 되어 쓰이지 않게 된 단어는 고어로 처리하고, 현재 널리 사용되는 단어를 표준어로 삼는다’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애닯으니, 애닯아, 애닯은’은 ‘애달프니, 애달파, 애달픈’의 잘못으로 처리한다. 이렇게, 많이들 쓰는 우리말을 굳이 비표준어로 처리해야 하는지 의문도 들지만, 뭐, 다른 것들을 모두 비표준어로 만드는 표준어 정책이라는 게 원래 폭력적이라서,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없다. 표준어 정책이 바뀌기 전까지는….

표준어 규정 제20항에는 이 밖에도 ‘낭→낭떠러지, 머귀나무→오동나무, 봉→난봉, 설겆다→설거지하다, 오얏→자두’가 더 있다. 이 가운데 머귀나무는 오동나무(현삼과의 낙엽 활엽 교목)라는 뜻으로 쓰지 않는다는 말이니, ‘운향과의 낙엽 활엽 소교목’인 머귀나무는 그대로 머귀나무라고 부르면 된다.

“원래 암기 자체를 초인적으로 잘 하는 사람도 가끔 있더라고요. 그런 사람은 그냥 책을 싸그리 외워요. …시험에 아주 특화된 인간인 거죠.”

어느 인터넷 매체에 실린 글인데, 여기 나온 ‘싸그리’도 비표준어다. 해서,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에는 아예 나오지 않는다. 개방형 국어사전인 <우리말샘>에는 그나마 이렇게 실려 있다.

*싸그리: 「방언」‘깡그리’의 방언(전남).

이러니 ‘하나도 남김없이’라는 뜻이라면 ‘깡그리’로 써야 한다.

‘세간에는 이미 대선 출마를 확정지었다는 말이 돌고 있고, ‘또 간 보는 분이 한 분 더 늘었냐’며 조소하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한 최재형 감사원장이 대선 출마설에 관한 질문에 부인하지 않고 “생각을 조만간 정리해서 말하겠다”고 하자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이날 ‘감사원장부터 흔들리면 어떡’하느냐며 페이스북에 올린 글 가운데 일부다.

한데, 여기 나온 ‘간 보다’도 표준어가 아니다. 이 말에는 싱거운지 짠지 간을 본다는 뜻밖에 없기 때문. <우리말샘>에 이렇게 올라 있기는 하다.

*간보다: 「방언」남의 속뜻을 살며시 헤아려 보다(전남).

이 자리에는 ‘깐보다’를 써야 한다. 표준사전을 보자.

*깐보다: 어떤 형편이나 기회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가늠하다. 또는 속을 떠보다.(일을 깐보고 시작하다.)

이게 뭔가, 싶겠지만 제대로 쓰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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