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부산 KT 결국 ‘수원행’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망국적 수도권 쏠림, 프로스포츠도 예외 아니다

프로농구 ‘부산 KT’가 17년 만에 연고지 부산을 떠나기로 하면서 부산 팬심이 들끓고 있다. 2003~2004시즌 이후 17년간 애정을 쏟았던 부산 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떠나는 KT에 ‘배신자’라는 말까지 따라붙는다. 심지어 KT 불매 운동까지 거론되고 있다.

KT 스스로야 부산을 떠나는 이유가 없지 않겠지만, 이 과정에서 부산 팬들은 적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KT는 다른 지방이 아니라 수도권의 수원을 새 연고지로 정했다.

수도권에는 프로농구 10개 팀 중 이미 절반가량이 몰려 있다. 프로스포츠 팀들도 결국 수도권 일극주의에 휩쓸리면서 그곳으로만 꾸역꾸역 모여드는 모양새다.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차지한 수도권이 이제는 프로스포츠마저 블랙홀처럼 마구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부산 기아·아이파크 이어
3번째 연고지 이전 논란
농구단 평소 수도권 생활
경기 때만 잠시 부산에
직원들도 대부분 외지인
부산에 대한 애착 없어
지역연고제 회피 목적도
KBL 중재커녕 바로 승인
스포츠 수도권 집중 심화
균형발전에 찬물 끼얹어
국민통합 취지 회복해야


■잊을 만하면 부산 탈출?

부산에 연고지를 둔 프로팀이 다른 지역 이전을 시도한 경우는 지금까지 프로농구에서 두 번, 프로축구에서 한 번 있었다.

프로농구의 경우 리그 원년 멤버였던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가 가장 먼저 부산을 떠났다. 기아 엔터프라이즈는 1996년 프로농구 리그 창설 당시 허재-강동희-김유택으로 이어지는 최강 멤버로 첫 시즌 우승과 다음 시즌 준우승으로 부산을 달궜다. 프로농구 역사의 첫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지만, 부산과 기아 엔터프라이즈와의 인연은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사직실내체육관의 겨울철 난방 문제 등 노후 시설에 대한 불만으로 부산시와 삐걱대는 사이 모 기업이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구단이 인수되자 곧바로 모 기업이 있는 울산으로 팀 이전이 거론됐고, 결국 2001년 울산으로 둥지를 옮겼다.

이후 2년 뒤인 2003년 당시 ‘여수 코리아텐더’ 농구단이 옮겨 오면서 부산은 다시 프로농구팀을 보유하게 됐다. 이 구단이 KTF에 이어 KT에 인수되면서 부산 KT라는 이름으로 지금에 이르렀지만, 이번에 다시 ‘수원 KT’로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이다.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옛 아이콘스)’도 2004년 서울 이전을 시도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1980~90년대 최고 인기 클럽이었던 ‘대우 로얄즈’ 축구단을 2000년 인수한 현대산업개발은 곧바로 부산 아이콘스로 팀 이름을 바꿨다. 인수 초창기 홈구장이던 구덕운동장 보수로 인해 인근 대구와 창원 등지에서 홈 경기를 치르는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모 기업의 경영적 판단이 어우러지면서 부산 아이콘스는 돌연 2004년 서울 연고지 이전을 선언했다.

부산 여론이 들끓자 당시 오거돈 부산시장 권한대행은 이명박 서울시장에 부산 아이콘스의 서울 이전을 반대해 달라는 건의까지 하고, 구단 측도 서울 이전 방침을 공식 철회하면서 연고지 사태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 과정을 쭉 지켜본 부산 시민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고, 자존심에도 많은 상처를 입었다. 현대산업개발은 연고지 논란이 벌어진 이듬해 팀 이름도 자사가 건설하는 아파트 브랜드인 ‘아이파크’로 바꿨다.

■경기 때만 연고지, 그 외엔 수도권 팀

지방을 떠나 수도권으로 가려는 프로팀들은 표면적으로는 선수단 편의성과 재정 문제를 거론한다. 이러한 문제가 제기되는 기본 배경은 프로팀의 지역 연고제가 여전히 허울뿐이기 때문이다. 이번 부산 KT만 보더라도 선수단 숙소나 연습장 등은 모두 수원에 있다. 경기가 없는 평소에는 부산이 아니라 수원에서 연습 등 일상생활이 이뤄진다.

경기가 있을 때만 잠시 부산으로 와서 호텔 등에 묵다가 경기 뒤 다시 수원으로 떠난다. 이름만 홈팀이지 경기 때만 오는 원정팀과 전혀 다르지 않다. 구단은 이로 인한 선수단 이동의 불편함이나 연습장 부족 등을 들면서 자꾸 수도권 이전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그렇다면 부산에 이런 시설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간명한 해결책이기는 하지만, 구단 입장에선 어느 정도 외부 지원에도 자체 재정 부담을 피할 수 없다. 이런 부분이 해결된다 해도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구단 전체의 의지다. 특히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적극적인 자세가 관건이다.

지역 농구계 한 인사는 이를 최고 난제로 꼽았다. “구단 직원들은 거의 수도권에 산다. 부산에 별다른 애착이 없다. 구단 전체가 그런 분위기인데, 누가 부산에 시설 투자를 하자고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겠나.” 지역 농구계는 수도권 이전을 막기 위해 부산 KT에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좀 더 시간을 두고 해결책을 찾자고 제의했지만, 구단 측의 연고지 이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고심해서 제시했던 대안은 구단 최고위층에는 전달조차 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프로스포츠에도 균형발전 개념 절실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은 2017년 프로농구의 저변 확대와 지역 정착을 위해 ‘의무 지역 연고제’ 도입을 결정했다. 오는 2023년 6월부터는 모든 구단이 의무적으로 연고지에서 훈련과 업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평소엔 수도권에 머물다가 경기 때만 방문하듯 연고지에 오는 행태를 막겠다는 취지다. 지역 농구계는 KT가 부산시와 지역 사회의 강한 유감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수도권 이전을 결정한 배경에는 지역 연고제 회피 목적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KBL은 이 과정에서 아무런 중재 역할도 못 했다. 프로농구 외연 확대를 위해 결정한 지역 연고제의 취지를 자기 손으로 무너뜨리는 한계만 노출했다. KBL이 불과 2년 앞으로 다가온 지역 연고제의 중요성을 감안했다면 부산 KT의 수도권 이전을 보류하거나 지역 사회와 추가 협의를 적극적으로 권유했어야 했다. 그런데 KBL은 부산 KT의 이전 신청을 이틀 만에 전격적으로 승인했다. 프로농구의 지역 연계 인프라 강화라는 지역 연고제 취지 자체가 무색해진 셈이다.

이렇게 되면 이 제도의 핵심 전제인 프로팀의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역 연계 강화는 이뤄질 수가 없다. 수도권 위주의 리그 운영은 전체 프로농구의 생존에도 결정적인 해악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부산 KT의 수도권 이전은 일개 프로팀의 문제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망국적인 수도권 일극주의가 국민 통합에 기여해야 할 스포츠 세계에도 큰 해악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로 남을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부산시가 보여 준 소극적인 대응과 ‘뒷북 행정’의 실망스러움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