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문자 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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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륜’이란 인간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도리에 어그러짐이다. 스포츠 분야에서 연고 지역의 팬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 버린 팀을 빗대어 부를 때도 사용된다.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도시로 연고지 이전을 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감행하거나, 서울로 못 가면 서울 인근 도시로 이전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부산 연고였던 프로농구팀 KT 소닉붐이 최근 수원으로 이전해 부산시민에게 큰 상처를 줬다.

연고지 이전을 했지만 욕을 먹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여수 코리아텐더는 형편이 어려워지자 2002-2003시즌이 끝난 뒤 부산시로 이전하기로 했다. “농구밖에 모르는 선수들의 생존을 위해 여수를 떠납니다. 집안의 미래를 위해 가난한 딸을 부잣집에 시집보낸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그래야만 친정이 있는 서쪽 여수의 하늘이라도 바라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코리아텐더가 절절하게 호소한 내용이다. 여수시민들도 “아쉽지만 큰 도시 가서 잘되길 바란다”면서 환송했다. 코리아텐더는 부산으로 연고지를 옮긴 뒤 KTF에 인수돼 안정적 생존 기반을 갖추게 됐다.

훈훈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수에 대한 KTF의 관심과 사랑은 계속 이어졌다. 부산 KTF 매직윙스는 2007-2008시즌에 여수 엑스포 홍보 문구를 달고 경기에 나섰다. 그해 시즌 마지막 홈경기는 여수시에서 치렀다. 경기 전에는 부산 중앙고와 여수 화학고의 시범경기까지 열렸다. KT는 2009년 KTF와 합병하면서 농구팀 이름이 KT소닉붐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KT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전 보류 협의를 요청했지만, KT 회장은 ‘혜량을 바란다’는 문자메시지 한 통만 달랑 보냈다고 한다. 17년간 부산과 맺은 인연이었다. 잠깐 사귀다 헤어질 때도 이렇게는 안 한다.

요즘 기업들 사이에서 ‘ESG 경영’ 바람이 불고 있다. 환경(Environmental), 사회적 책임(Social), 투명한 기업 지배구조(Governance)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다. 앞으로는 기업이 환경 보호와 사회공헌 등 ESG 요소를 충족하지 못하면 힘들어질 전망이다. 박 시장은 “KT는 지역 사회와의 약속을 저버린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 기업으로 부산시민들의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지역 팬들은 ‘#KT 해지’를 내걸고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KT의 이번 연고지 이전은 ‘ESG 경영’에 반하는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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