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승패는 모두 ‘바다’에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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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시간 / 자크 아탈리

부산은 바다 도시다. 과연 바다의 관점은 무엇인가. <바다의 시간>은 바다의 관점으로, 인류사의 승패가 모두 바다에서 결정됐다는 것을 풀어내는 프랑스 석학 자크 아탈리(78)의 책이다. ‘바다 인류사’를 통찰하면서 바다의 미래 대안까지 제시한다(후반부 대안 부분은 보고서 같은 느낌이 없지 않다).

인간과 바다, 서로 같은 형태 코드 지녀
6만 년 동안 인류 확산, 바다 통해 진행
1945년 후 컨테이너 혁명 ‘태평양 시대’
자원 고갈·오염된 바다, 조속히 구해야

인간과 바다는 상동형의 코드를 지녔다. 지구 표면 70%가 바다이고, 인간 70%가 물로 구성돼 있다는 건 희한하다. 인간 혈장이 바닷물 구성 성분과 매우 가깝다는 것도 그렇다. 바다에서 유래한 인간 생명의 기원과 비밀이 보이는 듯하다. 알제리 작가 카멜 다우드는 “바다는 역사의 순서가 뒤집혔다면 하늘의 자리를 차지했을 수도 있는 어떤 형이상학적인 것”이라고 했다.

‘바다 인류사’에서 역사 이전 6만 년 동안의 인류 확산은 바다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그중 인상적인 것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밝힌 바와 같이 기원전 2000년부터 태평양에서 해상 이동의 혁신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타이완에 갈라져 나온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이 동남아, 호주, 그리고 이후 수천 년에 걸쳐 태평양 수천 개의 섬 곳곳으로, 심지어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까지 퍼졌다는 거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 확산 이후 바다 인류사는 △1~18세기는 노와 돛을 이용한 바다 정복 △1800~1945년까지는 석탄과 석유로 정복된 바다 △1945년 이후는 컨테이너와 바다의 세계화로 구분된다.

역사적으로 중국에서는 바다의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했다. 당과 송은 바다 개방을 통해 국제적 문명과 많은 혁신을 이뤘다. 하지만 명과 청은 바다를 묶는 해금(海禁) 정책을 펼쳐 그 ‘퇴각의 바다 공백’ 속으로 유럽의 침략이 뛰어들었다.

중국과 달리 유럽에서 바다를 통해 패권의 부침이 쉼 없이 이어졌다. ‘바다 단련’을 거친 과정이었다. 지중해 패권은 로마와 이슬람에서 십자군전쟁을 거쳐 베네치아와 제노바로 옮겨가고, 13세기 이후 북해가 부상하면서 패권 중심은 브뤼헤(벨기에), 한자동맹, 얀트베르펜(벨기에)으로 이동했다. 그런 배경에서 15세기 이후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지리상 발견에 나서고, 유럽 바다의 패권은 다시 제노바와 베네치아로 갔다가 네덜란드로 옮겨간다. 그리고 18세기 정점에 영국 시대가 산업혁명과 함께 열려 ‘팍스 브리태니카’는 1945년까지 200년 이상 이어진다. 그 팍스 시대에 영국이 ‘아편전쟁 철퇴’로 중국을 내리친 것이다.

1945년 이후 바다의 역사는 양상이 달라진다. 이른바 컨테이너 혁명이 그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세계 경제 ‘영광의 30년’을 가능케 한 것이 컨테이너 수송 혁명이었다. 1949년 첫 고안 이후 컨테이너가 보편화된 것은 1970년대 미국에서 무기와 장비를 베트남으로 운송하던 베트남 전쟁 때였다고 한다.

컨테이너 시대의 핵심은 태평양 시대가 열렸다는 거다. 1980년대 일본 한국 중국의 부상에 따라 태평양이 대서양을 압도했다. 아시아 항구들이 세계 바다 권력을 장악한 것은 1986년이었다. 당시 싱가포르 일본(요코하마) 한국(부산) 순이었다. 1990년 이후로 중국이 급부상했으며 현재 세계 5대 항구는 중국 4곳과 싱가포르다. 이런 지표는 향후 세계 패권이 어디로 향할지 가늠하게 한다. 바다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통계 하나를 보면 바다에서 150킬로미터 이내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가 100년 전 인류의 30%였으나 2017년 60%에 이르렀다.

세계 최강국 미국은 무엇 하나. 바다 위가 아니라 바닷속을 거머쥐고 있다. 2017년 기준 전 세계 통신과 이미지 전송의 95%를 담당하는 해저 케이블은 263개인데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케이블 30개를 비롯해 중요한 것은 미국이 소유하고 있다.

우리는 어떡해야 하나. 여하튼 바다를 지향해야 하며 거기에 부산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기후 변화에 따라 열리는 북극(북동·북서) 항로에 눈을 돌려야 한다. 기존 세계적 향로보다 거리·시간이 30% 이상 단축된다고 하니 향후 향로의 대세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현재 바다는 숨 막히고 있다고 한다. 자원이 고갈되고, 오염되고 있고…. 그래서 바다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해양보호기금과 국제해양보호군(軍)을 갖추고서 어업을 통제하고,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는 데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강력한 세계해양기구를 창설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바다와 관련해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끓는다. 바다는 무궁무진하다. 자크 아탈리 지음/전경훈 옮김/책과함께/336쪽/1만 5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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