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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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길산(1960~)

감나무 가지가 갈라지는 언저리에

사람이 만든 새집을 매달아 두었는데요

새가 들었다간 나가고 들었다간 나갑니다

사람의 냄새가 새의 예민한 후각을 건드려

알 낳고 새끼 키우기가 께름칙한가 봅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사각 반듯하게 모양을 내고

머리 내리는 구멍까지 내었습니다

새의 처지에서 보면 왜 저러나 싶겠지요

감나무도 죽을 맛이겠지요

안 그래도 이고 진 게 많은데

사람이 매단 새집은 나무를 더 무겁게 했겠지요

새집 구멍도 기가 차는지

동그라질 대로 동그라져서는

새집 쳐다보는 사람을 빤히 쳐다봅니다

-시집 (2019) 중에서-

고성에 들어가 전원생활을 하는 시인이 자연과의 교류를 소품처럼 만든 시이다. 집 앞 나무에 새가 깃드는 것을 보고 작은 새집을 지어주고 새의 일상을 깨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에서 자연에 동화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은 상호 보완관계이지 주종 관계는 아닐 것이다. 자연 속에서 새로운 삶의 여백을 배우고자 시작한 전원생활에서 만나는 나무와 새들은 시인에게 마음을 만만하게 열어주지 않는다. 겨울 햇살도 남향집에 들어온 손님이 되는 고독한 전원생활. 그 속에서 시인을 상대해주지 않는 집 앞 풀잎을 보며 세월도 같이 붉어지기를 바라고, 지는 꽃잎보다 지켜보는 시인의 마음이 더 아파가는 것도 배워간다. 자연과 시인 사이에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음을 점차 깨달아가는 시인의 하루가 오늘도 반짝인다.

이규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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