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우리 편’이 ‘남의 편’이 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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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내년 3월 9일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 선출을 위한 레이스 열기가 슬슬 달아오르고 있다. 여야 주자들의 출마 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후보 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최고 수준의 정치공학적 기술과 방법이 난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국의 국가 경영 세력을 교체하는 일인 만큼 온 나라가 한바탕 요동칠 게 뻔하지만, 이번 대선은 역대 선거와 비교해 유독 도드라지는 점이 있다.

여야를 통틀어 20명이 넘는 주자가 거론되는 것도 그렇지만, 선출직 공직 경험이 전혀 없거나 비주류로 분류됐던 정치인의 부상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핵심 요직을 지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의 대선 후보 부상은 최대의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20대 대선 레이스 본격적인 개막
여야 20명 이상 후보자 경쟁 치열

윤석열 등 현 정부 고위직 야권행
여권은 격한 용어로 출마 맹비난

“여당이 원인 제공” 대체적인 평가
내부 포용성 없으면 ‘우리 편’ 없어

3명 모두 수사와 감사, 경제라는 국가 경영의 한 축을 맡았던 책임자로 임명 초기 문 대통령으로부터 최고의 기대와 찬사를 받았다. 대통령은 물론 여야 정치권 누구도 이들이 ‘여당 인재’임을 의심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정반대다. 이들은 야권 주자로 국민에게 인식되고 있다. 여야 반응도 180도 바뀌었다. 여권은 ‘배신자’ ‘배은망덕’과 같은 격한 말로 화풀이한다. 국민의힘은 입당도 하지 않은 이들을 ‘보호해야 할 당의 자원’으로 대접한다.

정치의 변화무쌍함을 가리키는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이 세 명을 둘러싼 ‘정치적 상전벽해’는 이번 대선 결말과 무관하게 두고두고 회자할 것이다. 여권은 특히 헌법과 법률로 임기를 보장하고 있는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의 정치판 직행을 놓고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훼손이라며 맹비난한다. 당연히 지적할 수 있는 문제다. 이에 따른 해명과 책임은 말할 필요도 없이 당사자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앞으로 사정 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이나 독립성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매번 본보기로서 이번 사례가 소환되더라도 이 역시 당사자가 감내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왜 정작 자신을 발탁해 준 현 정권을 등지고 정치적 반대편으로 쏠리게 됐는지는 냉철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무엇보다 현 여권이 가장 절실하게 곱씹어 봐야 할 부분이다. 이들의 행동이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하기 짝이 없다고 해도, 이와 별개로 여권 내부의 풍토가 그렇게 만들었다면 먼저 자기 자루부터 뒤집어서 살펴봐야 한다. 대선 승패를 떠나 정당의 건강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지금까지 여론을 살펴보면 이들의 야당행은 현 정권이 자초했다는 게 대체적인 설명이다. 정책 방향을 두고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폐쇄성과 적대적 배제, 병적인 자기 무오류성 집착과 포용성 부족 등이 이들을 밖으로 내몰았다는 분석이다.

이들이 현 정권과 결정적으로 갈라서게 된 계기를 보면 알 수 있다. 모두 정권이 민감하게 여기거나, 꺼리는 문제의 처리를 놓고 여권 핵심과 사이가 틀어졌다. 그 이후부터는 집중적인 견제와 공격이 쏟아졌다. “우리 총장님”은 그 사이 ‘정권 내 공공의 적’이 됐다. 여권 내 공격 강도가 거셀수록 국민의 뇌리에 이들의 존재감은 갈수록 높아졌다. 여권이 자기 자루 속 인적 자원을 키워서 야권에 바친 꼴이다. 뚜렷한 후보조차 없던 국민의힘이 이번엔 거꾸로 ‘좋은 여당(?)’ 덕을 보았다고 해야 할까.

수백 년간 참혹했던 전쟁의 시대를 끝낸 중국 고대 진(秦)나라가 천하통일의 발판을 다질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인재를 껴안는 탄력성과 포용성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를 내팽개치자 곧 그 어렵게 이룬 대업도 조기에 무너지고 말았다.

국가 경영을 꿈꾼다면 누구라도 반드시 짚어 봐야 할 대목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인재라도 결국에는 서로 뜻을 합하지 못하고 좋지 않은 채 끝나고 말 것이다.

지금은 여권에 더 절실하게 들릴지 모를 말이지만, 사실 야권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서 돌아선 고위직 인사들이 야권으로 분류되며 야권은 후보 풍년이라는 반사 이익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반사 이익만으로 대권을 잡을 수는 없고, 더더욱 그래서도 안 된다.

현재 지지율 선두권에 든 후보 중 야권에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사람은 찾기 어렵다. 더욱이 국민의 이목을 끄는 범야권 주자 중에는 오히려 외부인이 더 많다.

정치권 최대의 이합집산이 벌어지는 시기가 대선이라고 해도 인재가 성장할 토양인 내부 탄력성과 포용성 확보에 실패한다면 어느 정당이든 미래를 보장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우리 편’이라고 해도 결코 ‘우리 편’이 되지 않을 것이다.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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