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의 소아시아 기행] 죽음의 푸가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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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철학자

시집 <언어창살>이 세상에 나온 직후인 1959년 7월에 유대계 독일 시인 파울 첼란은 친구 페터 촌디의 초대를 받아들여 아내 기젤과 네 살 된 아들 에릭과 함께 스위스 알프스의 엥가딘 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 실스 마리아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아도르노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첼란은 파리로 일찍 되돌아갔고, 아도르노와의 만남은 우연치 않게 불발로 끝나버렸다.

한 달 후, 이루어지지 못한 이 상봉으로부터 첼란의 유일한 산문 픽션 ‘산중대화’가 태어난다. 산문이라 하나 시적 운율이 붙은 이 작은 글 속에서 작은 유대인(첼란 자신)이 큰 유대인(아도르노)을 만나 둘이 한동안 재잘거리고 수다를 떤다.

스위스 알프스의 작은 마을 ‘실스 마리아’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를 착안한 곳
유대계 시인 파울 첼란의 시적 공간이기도
외로운 여행자에게 유독 큰 여운 드리워

실스 마리아. 이곳은 ‘실스 마리아의 구름’이라는 영화의 주무대이기도 하나, 나에게는 무엇보다 니체가 같은 제목의 시 ‘실스 마리아’를 남긴 곳이자 그의 주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초인과 영원회귀 사상이 처음으로 착상한 곳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첼란 역시 이곳을 방문한 후 소감을 안 남기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누이동생의 개입으로 나치에게 오용당할 대로 당한 초인의 창조자 니체를 동정하여 <산중대화>의 별쇄본에다가 적어 넣은 글이 있다. ‘실스 마리아와 니체를 떠올리며. 여러분도 알다시피, 니체는 모든 반유대주의자들을 총살시키고 싶어 했다.’

내가 아직까지 실스 마리아를 가보지 못한 것은 이미 거기에 가장 반니체적인 정신과 이력의 소유자인데도 대표적인 니체 전문가로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의 한 교수가 관광차 방문하여 그 장소와 니체의 정신을 더럽혔기 때문만은 아니고, 달리 가볼 곳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사실 이러한 기가 막히는 둔갑술은 한국 사회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동안 실스 마리아를 방문한 사람은 차고 넘치는데, 혹여 그곳에 있는 유명한 발트하우스 호텔에서 묵는다면, 취향에 따라 ‘(누구)’와 함께라는 이름표를 단 저녁식사를 대접받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토마스 만이나 바그너, 프루스트 등이 그 괄호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니체와 함께’라고 하는 이름표는 없다고 한다. 장에 문제가 있어서 기름진 음식을 가까이하지 못하고 늘 식이요법을 해야 했던 니체의 식사가 부유한 호텔 방문객의 구미를 당기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어느 날 내가 실스 마리아를 찾아가 본다면, 니체의 바위도 보고 싶고, 실스 마리아의 구름도 보고 싶다, 그러나 그 구름은 영화 ‘실스 마리아의 구름’에 나오는 거대한 용과 같은 구름, 그러니까 말로야 고갯길을 가득 채우며 꿈틀대고 올라가는 이른바 ‘말로야 스네이크’보다는 기왕이면 그곳 하늘에 그냥 평범하게 떠있는 구름이면 좋겠고, 잿빛 구름이면 더 좋겠다. 햇살을 받아 황금빛을 발산하는 찬란한 구름보다는 외로운 여행자에게 더 큰 그늘을 마련해 주는 잿빛 구름(이것이 ‘죽음의 푸가’를 읽기 위한 하나의 힌트다).

사실 ‘산중대화’에서 작은 유대인은 해만 저무는 게 아닌 어느 저녁에 산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구름 아래로, 그늘 속에서. 니체의 경우, 차라투스트라 역시 그의 나이 서른에 산속으로 들어간다. 이때 니체가 구사하는 표현은 “그에게 해만 저문 것이 아니었다”였다. 첼란은 이 표현을 니체의 저서가 아닌 하이데거의 저서 <니체>를 읽다가 처음 발견하고, 자신의 ‘산중대화’의 첫 문장으로 써먹는다.

잿빛은 첼란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색깔이다. 특히, 그가 첼란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표한 시 ‘죽음의 푸가’에는 마치 후렴구같이, 아니 푸가이니만큼 에피소드(삽입구) 같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 시행이 있다.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 너의 잿빛 머리카락 슐라미트.’

독자를 충격과 경악에 빠뜨리는 것은 잿빛 머리카락만이 아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많은 비유들, 이를테면 검은 우유, 공중의 무덤, 무덤을 파는 자들을 위해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춤곡 등은 이 시를 아우슈비츠 이후 시의 표준으로 만들었다. 이 놀라운 시는 전쟁이 쓰게 만든 시들 중에 그 어느 것보다 사람들의 뜨거운 주목을 받으면서 ‘전후 유럽 문학의 게르니카’로 불리게 된다.

이번 칼럼은 소아시아 기행은 잠시 뒤로 미루고 2회에 걸쳐 ‘죽음의 푸가’가 살아온 파란만장한 생애를 탐구하는 기행을 떠나볼 예정이다. 이 시의 이면에는 탱고에서 트로트를 거쳐 푸가에 이르는 긴 여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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