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급한 중소기업 “정부·지자체 안전설비만이라도 지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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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드는 안전한 일터] 3.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눈앞

오랜 진통 끝에 통과된 중대재해처벌법이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노동계와 재계 모두 후퇴한 ‘누더기법’이라며 반발했지만, 통과된 법은 당장 몇 개월 뒤 50인 이상 사업장부터 적용이 시작된다. 그로부터 2년 뒤에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법이 적용된다.

사업장은 이에 대한 대비가 얼마나 돼 있을까. 법만 시행되면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현저히 줄어들 수 있을까.

노동자는 물론이거니와 사업주, 정부 모두 산재 사망사고가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다. 법 시행과 함께, 누구도 원치 않는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할까.

부산 중기 절반, 법 시행에 대비
근로자 안전교육 강화에만 매달려
사업주, ‘부주의’가 사고 원인 인식
안전관리 비용 예산 미책정 73%
정부 업종별 ‘상세 가이드’ 요구

■법 시행 대응 ‘안전교육 강화’ 대부분

부산 중소기업의 절반가량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앞서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가량은 준비나 대응을 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의 경우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중앙회 부산울산지역본부가 지난달 10~14일 부산 지역 201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관련 부산 중소기업인 의견 조사’를 실시한 결과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준비와 대응을 하고 있다는 응답은 40.8%, 철저히 준비·대응하고 있다는 응답은 11.4%로 나타나 절반 정도인 52.2%가 법 시행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응답자의 36.4%는 ‘준비·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11.4%는 ‘준비나 대응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해 47.8%는 아직 대비가 안 된 것으로 조사됐다.

대응 내용으로는 ‘근로자의 안전교육 강화’가 78.1%(복수 응답)로 가장 많았다. 별도의 ‘사내 안전관리규정 운영’(25.9%)과 ‘시설 보완이나 보강 등 설비투자 강화’(17.4%)는 이보다 눈에 띄게 적었다.

안전교육 강화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사업주들이 산재사고 발생의 주된 원인을 ‘근로자 부주의 등 지침 미준수’(47.7%)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설 노후화’(10.7%)와 ‘전문 관리인력 부족’(7.3%) 탓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이에 비해 매우 적었다.

하지만 올해 4월 22일 경기도 평택항 부두에서 발생한 대학생 이선호 씨의 사망 사건을 보면, 근로자의 부주의 탓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작업 유도원, 즉 신호수가 있었더라면(별도의 안전관리 요원), 사고가 난 개방형 컨테이너에 날개가 천천히 접히도록 하는 스프링이 있었더라면(설비 투자), 무리한 작업 지시가 없었더라면(안전 관련 작업 매뉴얼) 귀중한 생명을 잃는 비극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비용’의 문제와 직결된다. 설문 조사에 응한 중소기업의 84.1%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이 경영에 부담이 된다고 응답했다.



■“정부·지자체가 설비 지원해야”

실제 중기중앙회 부울본부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안전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을 연 예산에 별도로 책정하지 않는 기업(73.1%)이 책정하는 기업(26.9%)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 안전과 관련한 별도의 규정을 만들지 않은 기업(55.7%)이 만들어 운영하는 기업(44.3%)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 시행을 코앞에 뒀지만 상당수 기업들은 근로자 안전 교육을 강화하는 것 외에는 다른 현실적인 답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고 것이다. 이에 따라 사업주들은 산업안전 강화를 위해 정부·지자체가 ‘안전설비 투자비용 지원’(53.7%, 복수응답)을 해주기를 가장 원했다. 다음으로는 ‘업종별·작업별 안전의무 준수 매뉴얼을 보급해줄 것’(37.3%)을 희망했다. 사업주 처벌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내밀었다면, 그에 맞게 사업주가 안전 관련 대비를 할 수 있도록 정부나 지자체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주고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허현도 중소기업중앙회 부산울산지역회장은 “중소기업도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법을 잘 준수해야 하겠지만 안전을 위한 자체 투자에는 인력과 재정의 한계가 분명히 있다”면서 “처벌만을 위한 법 제정이 아니고 진정한 산재 예방을 위한 것이라면 정부와 지자체에서도 안전설비투자 지원과 매뉴얼 보급 등 적극적인 지원을 모색해 달라”고 밝혔다.



■“해석 논란 없는 명확한 기준부터”

업계에서는 아예 정부가 안전조치 세부지침이 수록된 현장매뉴얼, 즉 공정별 표준안전 작업기준 가이드북을 만들어 배포해줄 것을 요청했다. 해석의 논란이 없는, 공통적으로 통용되고 인정되는 기준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또한 사업주가 이 기준을 모두 지켰다면 사고 발생 시 면책도 가능하게 해 달라고 건의했다.

부산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은 지난달 1일 부산고용노동청장과의 간담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제안했다.

최금식(선보공업(주) 회장) 이사장은 “대기업의 경우 별도의 안전관리 조직 운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지만 중소기업은 단기간에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에 안전보건체계 확립을 위한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특히 중소기업은 원·하청 구조에 따라 산업현장 최하부에서 산재사고의 1차적 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현재 인적, 재정적으로 열악해 안전보건에 역량을 쏟아 부을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조합은 또 “사업주가 준수해야할 안전조치 의무기준에 대한 해석의 논란이 없도록,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 주고 이에 따른 안전조치 의무사항을 철저히 준수한 기업에 대해서는 사고발생 시 면책이 가능하도록 조항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이와 관련,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30대 기업 인사노무담당관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해·위험요인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업무 처리 절차 마련 여부 △전문인력 배치 여부 △안전시설과 이를 위한 예산 투입 적정 여부 등을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해 필요한 조치’로 규정할 계획임을 밝혔다. -끝-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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