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12개국 대기근 위기… 굶주린 사람들 도웁시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임형준 유엔세계식량계획 한국사무소장

30년 전 배낭 하나를 둘러메고 지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낀 대학생이 있었다. 그 대학생은 이제 세계 최빈국을 도와주는 국제기구의 중추적 인물이 되어 배고픈 사람들의 고통을 달래주고 있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World Food Programme)의 임형준(50) 한국사무소장이 주인공이다. WFP는 기아에 놓인 사람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긴급 재난이나 분쟁 때 구호활동을 하는 유엔 산하 국제기구로, 2019년 기준으로 88개 국가에서 9700만 명의 배고픈 사람을 돕고 있다.

대학생 때 배낭 여행하며 봉사 인연
85개국 현장소장 중 유일한 한국인
고향 부산에서도 돕기운동 확산되길

부산에서 태어나 브니엘고를 졸업한 임 소장은 2002년 WFP에 몸을 담은 뒤 중남미 온두라스 사무소에서 출발해 아프리카 기니, 라오스, 이탈리아 로마 본부 등에서 근무했다.

임 소장이 WFP에 들어간 직접적인 계기는 대학생 배낭여행 때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돈이 떨어져 사흘이나 굶어서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그때 자신에게 음식을 나눠준 선원을 생각하면서였다고 한다.

임 소장은 “방글라데시, 인도 등 가난한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기아라는 생지옥을 눈으로 봤는데, 제가 직접 굶주림을 겪고 도움을 받아보니 식량 원조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고 회상했다.

WFP는 1963년 대홍수와 식량위기에 빠진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1984년까지 식량을 지원해왔다. 그 후 한국은 기아를 극복하고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지위가 바뀌었고, 2011년 한국사무소가 만들어지면서 임 소장이 부임한 것이다.

한국사무소 설립 초기만 해도 한국은 공여국 순위 50위권(지원 대상 57만 명)이었는데 지난해는 10위로 껑충 뛰었고 850만 명에게 식량을 지원하는 ‘큰손’이 되었다.

임 소장은 “인류의 역사는 기아와의 투쟁의 역사였다”며 “21세기에도 6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는데, 유엔은 2030년까지 기아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저도 미약하나마 여기에 기여하는 삶을 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사무소장으로 있으면서 ‘제로 웨이스트, 제로 헝그리’운동이 뿌리내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가정이나 식당, 단체급식 과정에서 버려지는 음식을 최소화해 그 비용으로 굶주린 사람들을 돕자는 것이다.

임 소장은 “올해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충격이 실질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12개국에서 3600만 명이 대기근의 위기를 맞았다”면서 “집에서든, 외식을 하든 조금씩만 음식을 아끼면 기아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임 소장은 고향인 부산에서도 이 운동이 확산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히면서 부산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주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다행히 임 소장은 박성훈 부산시 경제특보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공행정학을 함께 공부했던 인연이 있어 그 기회를 잘 활용해 보겠다는 의지도 살짝 드러냈다.

임 소장은 10년 가까이 맡았던 한국사무소장직을 떠나 서아프리카 기니사무소장으로 부임할 예정이다. WFP는 전 세계 85개국에 현장소장을 두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한국인은 임 소장이 유일하다고 한다. 임 소장은 오는 7월 말 출국하고, 가족들은 연말께 현지에 합류한다는 계획이다. 임 소장은 “대학생 배낭여행 다닐 때도 몇 달씩 연락이 두절돼 부모님을 엄청나게 걱정시켜 드렸는데, 10년 만에 다시 우리나라를 떠나게 돼서 부산에 계신 어머니를 자주 못 뵙게 됐다”면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