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엑스포 스토리] ① 루이뷔통·에르메스가 글로벌 명품으로 성장한 비결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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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박람회기구(BIE)는 2023년 11월에 2030년 월드엑스포 개최지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BIE가 최근 이를 6개월에서 1년 정도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부산의 ‘엑스포 시계’도 훨씬 빨라지게 됐다. 지난달 23일 엑스포 유치신청서 제출로 2030월드엑스포 공식 후보 도시가 된 부산도 급해졌다.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유치하려면 부산·울산·경남은 물론 전 국민이 부산엑스포 개최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는 (사)2030부산월드엑스포 범시민유치위원회와 엑스포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낸 ‘당신이 모르는 엑스포 스토리’를 공동으로 기획해 매주 연재한다.

루이뷔통의 직사각형 의상 트렁크 등
1867·1889년 파리엑스포 통해 주목
에르메스 제품도 엑스포가 성장 발판
1855·1867년 파리서 마구용품으로 1위
몬트리올 안내원 유니폼 ‘미니스커트’
텔레비전 방송 후 전 세계 열풍 일으켜

■루이뷔통 키운 엑스포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달 21일부터 나흘간 부산엑스포 유치신청서 제출을 위해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다. 이때 파리의 LVMH(Louis Vuitton Moet Hennessy) 그룹 본사를 찾았다. LVMH 그룹은 루이뷔통과 크리스찬디올 등 60여 종의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적인 명품 기업이다. 박 시장은 LVMH 그룹 장 밥티스트 보아장 최고전략책임자를 만나 부산 기업과의 협업 전략을 논의했다.

세계 고가 브랜드 업계를 호령하는 루이뷔통이 엑스포를 통해 성장한 업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1821년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루이 뷔통은 목수인 아버지로부터 기술을 배우다가 파리행을 결심했다. 가방 장인 마르샤의 견습공으로 시작한 루이 뷔통은 결국 나폴레옹 3세의 아내인 유제니 황후가 총애하는 장인으로 성장했다.

1854년 자기 이름으로 가게를 낸 그는 교통 수단이 마차에서 기차로 전환하는 상황에 주목했다. 이전의 나무 상자 대신 기차 증기가 스며들지 못하도록 방수 가공을 한 캔버스 천으로 가방을 만들었다. 또 직사각형 트렁크를 개발해 여러 벌의 실크 드레스 등 고가의 내용물을 보호해 상류층 인사들의 호평을 받았다.

루이뷔통의 트렁크는 1867년 파리엑스포를 통해서도 세계 무대에 선을 보였고, 5만여 점의 출품작 중 동메달을 받는 성과를 거뒀다. 22년 뒤 1889년 파리엑스포에서는 수납용 서랍과 옷걸이가 달린 의상 트렁크로 금메달을 받았다. 전 세계에 루이뷔통이라는 이름은 더 널리 알려졌다.

루이뷔통은 1900년 파리엑스포에서 회전목마 형태의 전시 부스를 마련하고, 가죽 제품 시리즈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 같은 역사를 가진 루이뷔통은 2010년 상하이엑스포에서 ‘1867년 파리에서 2010년 상하이까지’를 주제로 특별회고전을 열기도 했다. 루이뷔통은 지난해 대략 18조 5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가 됐다.

■에르메스와 미니스커트

명품 에르메스를 탄생시킨 티에리 에르메스 역시 엑스포에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1837년부터 공방을 열고 마구(馬具)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최고의 품질을 지향하는 그의 철학이 담긴 제품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프랑스 최초로 1855년에 파리엑스포가 열렸다. 에르메스는 수제 마구를 출품해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수많은 파리의 상류층이 그의 단골이 되는 계기가 됐다. 그는 1867년 파리엑스포에서도 마구와 안장 장식품을 출품해 다시 1등상을 거머쥐었다.

1914년 에르메스의 손자 에밀 모리스가 가업을 이어받으면서 혁신이 시작됐다. 모리스는 기차 여행에 어울리는 패션 소품으로 눈을 돌렸다. 마차가 기차에 자리를 내주면서 주력 상품이던 마차 관련 용품도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을 예상한 것이다.

1922년 미국 군용차 후드의 개폐장치로 쓰인 지퍼에 대한 독점권을 얻은 에르메스는 이를 가방 제품에 적용했다. 또 말 안장에 사용하던 박음질을 가방에 도입해 큰 인기를 얻었다. 벨트나 장갑, 옷, 손목시계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오늘의 명성을 얻는 발판이 됐다. 에르메스의 로고가 왜 마차 모양인지 눈치챌 수 있는 대목이다.

엑스포에서는 세계적으로 새로운 트렌드가 탄생되기도 한다. 1965년 영국인 디자이너가 선보였던 미니스커트는 1967년 몬트리올엑스포에서 영국 전시관의 여성 안내요원 유니폼으로 활용됐다. 이들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노출되자 많은 여성 관람객이 자유로운 패션 스타일에 열광했다.

결국 몬트리올엑스포에 참가한 대부분 국가의 전시관 안내요원 유니폼이 미니스커트로 바뀌면서 세계적으로 미니스커트 열풍을 일으켰다.

10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5년마다 열리는 등록엑스포는 미래를 지향하는 국내외 기업에 더없는 기회의 장이 된다.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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