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지역사회 묶어 주는 부산 수정초등 ‘예술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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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부산 동구 수정초등학교에서 열린 ‘수정 블렌디드 예술축제’에서 ‘수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왼쪽)와 ‘수정 다울림 취타대’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작은 사진은 뮤지컬팀 ‘부산 세레나데’의 공연 모습. 정대현 기자 jhyun@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아프리카의 속담이다. 학교와 지역사회 관계의 중요성을 이 속담처럼 잘 보여주는 문구도 없다. 부산에서는 동구의 수정초등학교가 음악으로 지역사회와 활발히 교류하면서 학교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암울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최근 수정초등 운동장에서 울려펴진 아름다운 음악은 지역 사회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도 남았다.


코로나 극복 ‘수정 블렌디드 예술축제’
오케스트라·취타대 등 동아리 기량 뽐내
지난해 ‘학교예술교육 공모전’ 최우수
8년째 지역민 초대 마을 축제 진행
구청·학교·지역민 상호 격려와 지원


■오케스트라부터 취타대까지

지난 1일 오전 수정초등 운동장 특설무대. 부산예술단의 땅줄놀이가 마치자 무대에는 보면대(악보받침대)가 설치됐다. ‘수정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단원들을 위한 공연 준비로 무대 주변이 분주해졌다. 이 학교 학생과 교사들로 구성된 단원들이 각자의 악기를 들고 무대에 오르자 관람석에서는 친구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교직원과 학생들은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숨죽여 공연을 지켜봤다.

초등학교 오케스트라라는 이유로 수준이 그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1번 바이올린 주자의 화려한 비브라토(음을 떨리게 하는 기법)에 경쾌한 마림바 소리가 곡의 독창성을 더했다. 수정필하모닉이 이날 공연한 곡은 로시니의 ‘윌리엄텔 서곡’과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1악장’, 쇼스타코비치의 ‘재즈왈츠’ 등 3곡이었다. 흔히 알려진 곡들이지만 각 곡마다 생동감이 살아있었다.

수정필하모닉에서 호른을 연주한 6학년 김민선 학생은 “방과후교실에서 호른을 처음 접하고 3년 동안 배우고 있다”면서 “호른은 배우기 어려운 악기지만, 한편으로 무척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수정초등은 지난달 28일부터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블렌디드 예술축제’를 이어가고 있다. 오는 9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예술축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염두에 두고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진행된다. 1일에는 수정필하모닉을 비롯해 ‘다울림 대취타’ ‘더울림 가야금 병창’ 등 학생예술동아리가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뽑냈다. 수정초등에는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 음악동아리도 있다. 이 학교 교사들로 구성된 국악기 해금 동아리 ‘The 그음’도 이날 2부 무대에 올라서 그윽한 해금 연주를 선사했다.

이처럼 근사한 공연을 완료하면 음악 동아리에 지원하는 학생들도 대폭 늘어난다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다. 김근자 수정초등 교사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천신만고 끝에 이번 공연을 마치니 저학년 아이들이 예술 동아리에 서로 가입하겠다고 손을 들어 오디션을 봐야할 정도다”면서 “그동안 코로나19 때문에 아이들이 공연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어려운 날을 보냈지만,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이런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아이들의 기량을 제대로 펼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민들도 기다린 수정 예술축제

수정초등은 이미 부산을 넘어서 전국적으로도 예술 교육으로 명성이 드높다. 2012년에는 수정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했고, 2013년에 ‘수정 꿈드림 합창단’이 탄생했다. 2015년에 수정 취타대 창단에 이어 올해에는 가야금 병창까지 더하는 등 서양음악과 국악의 범주를 넘나들고 있다. 지난해에는 교육부 주관 ‘2020년 학교예술교육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이 공모전은 매년 학교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학교 현장의 우수사례를 발굴·보급해 학교 내 예술교육 확산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열린다. 수정초등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상황에도 ‘등굣길 음악회’ ‘온울림 꿈나래와 음악축제의 거리 두고 다가가기’ 축제 등 다양한 행사를 운영해 호평을 받았다.

게다가 수정초등의 예술교육이 더 빛나는 이유는 지역민과 함께하는 예술교육으로 승화됐기 때문이다. 특히 수정초등의 활발한 음악 교육은 가뜩이나 학령인구가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는 원도심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수정초등은 2014년부터 매년 예술축제를 진행해왔다. 축제 참가인원만 학부모와 주민 등 1000명이 훌쩍 넘기는 예사였다. 안타깝게도 지난해에는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지역 주민 초청이 무산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올해에는 온오프라인으로 동시 진행을 시도한 것이다. 놀랍게도 지난 1일 행사 종료 직후 유튜브를 통해 공연을 지켜본 인원만 1600명이었다.

김근자 교사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유튜브로 공연을 지켜볼 줄 상상도 못했다”면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공연을 준비한 학생, 교사들에 대한 격려 메시지도 쏟아져 큰 힘이 났다”고 말했다.

지역사회 또한 수정초등의 예술축제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동구청은 예술축제가 열리기 전부터 홍보에 정성을 쏟았다. 구청 홈페이지에 수정초등 예술축제 내용을 알리고, 주민들에게도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 수정초등뿐만 아니라 인근의 다른 학교 음악동아리도 축제 때마다 찬조 공연으로 무대에 오른다. 부산의 예술단체들은 예술축제 때 저렴한 공연료를 받고도 공연을 더 해주고 싶다고 제안해 학교 측을 감동시켰다는 후문이다.

수정초등에서 교감 시절부터 예술축제를 진두지휘한 한영천 교장은 “지난해 마을 주민들이 예술축제에 못 오셔서 그런지 올해는 축제 언제 하냐는 문의를 꽤 많이 받았다”면서 “학생, 학부모, 교직원 못지 않게 지역 주민들도 우리 축제를 학수고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자랑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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