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감사가 필요한 건 부산시 감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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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국 사회부 경찰팀장

당사자가 원하든, 원치 않든 세상사 들여다보고 간섭하는 게 기자의 업(業)입니다. 특히나 사회부 기자는 풍악 울리는 자리보다는 악다구니 쏟아지는 자리가 더 익숙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죠. 돌발상황은 언제나 당혹스럽습니다.

지난 주 부산시 감사위원회를 상대로 취재하다 겪은 해프닝은 근래 가장 당황한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기자는 ‘부산시 한 산하 기관에서 성희롱이 발생했고, 이 사실이 시장에게 보고되지 않았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부산시 공직사회는 오거돈 전 시장의 추문 이후 환골탈태 중입니다. 지난달 시내 한 지자체의 성추행 사건 은폐 의혹이 본보에 보도됐고, 이어 조직 내 성추문을 무마하려던 또 다른 산하 기관장은 직위해제를 당했습니다.

어느 기자인들 이 제보를 쉽게 넘길까요? 기관을 상대로 사실 관계를 확인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건 사실이 맞더군요.

헌데, 여기서 웃기지도 않는 일이 벌어집니다. 부산시의 성희롱·성폭력 예방 조례안을 놓고 부산시 감사위원회와 피감 대상인 해당 기관의 해석이 엇갈린 겁니다.

조례안 제 27조는 ‘구청장, 군수 및 공직유관단체의 장은 해당 기관에서 성희롱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경우 지체 없이 그 사실을 시장에게 통보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해당 기관은 “피해자가 사건과 관련해 정식 조사를 원치 않았고, 2차 가해를 우려해 조사를 중단했다. 이 경우 시장에게까지 보고할 의무는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부산시 감사위원회는 이를 ‘조례규정 위반’이라고 했습니다. 조례안에 따라 성희롱 관련 사건은 인지 즉시 시장에게 보고해야 하고, 이는 피해자 의사와는 무관한 의무라는 게 감사위원회의 주장입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았을까요? 네, 맞습니다. 기관의 해명이 정답이었습니다. ‘시장 보고는 성희롱 사건을 인지한 순간부터 의무다’라고 주장하던 감사위원회는 기자가 취재한 지 사흘째 되는 날 돌연 입장을 바꿨습니다. 조례안을 과하게 해석했다는 게 이유랍니다. 결론적으로 부산시 사정 업무를 총괄하는 감사위원회가 피감 기관의 해명을 듣고 규정을 다시 파악한 셈입니다.

유권해석을 부탁한 대목이 사문화된 조례라면 이해라도 했겠습니다. 올 상반기 부산시에 접수된 성추행과 성폭력 관련 상담과 조사 의뢰만 40건에 육박합니다.

그런데도 이들의 사정을 담당하는 부산시 감사위원회가 관련 규정을 몰랐다는 이야기는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오거돈 전 시장은 ‘내부 직원은 못 믿겠다’며 행정부시장 직속의 감사관실을 시장 직속의 합의제 기구인 부산시 감사위원회로 바꿨습니다.

그러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보다 규정 위반 사항 하나 파악하지 못해 애먼 기관, 애먼 사람 잡을 뻔한 전문성부터 기르는 게 낫지 않을까요? 피감 기관의 해명을 듣고서야 규정을 다시 알아보는 수준의 감사가 과연 공직사회 내부에서 제대로 된 무게감을 가질까요?

부산시청과 산하 기관보다 부산시 감사위원회의 직무감사가 더 시급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k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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