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이 다녀갔다”… 재개발 노린 ‘지분 쪼개기’ 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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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광풍 속에서 편법 ‘지분 쪼개기’가 정비구역 지정 여부를 가리지 않고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른바 ‘화가’로 불리는 부동산 세력이 임의로 구역을 그리면서 투기판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비구역 지정되지 않은 지역
필지 분할 방식 토지 거래 활개
전포동선 32명이 한 필지 매입
60㎡ 소유 땐 분양권 획득 악용
재개발 사업 광풍 속 투기 행위
사업성 떨어져 재개발 무산되면
원주민 피해 커 관련법 개정 필요

5일 부산 부산진구청 등에 따르면 부산진구 전포동 일대 ‘A 구역’ 가칭 재개발 추진준비위원회(추진위)가 재개발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사전타당성 검토 신청 서류를 보완 중이다. 지난 2월께 추진위는 부산진구청에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사전타당성 검토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는 재개발을 위한 첫 행정 절차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구청은 당시 원주민 의견 수렴 부족 등을 이유로 이를 반려하고 서류 보완을 요구했다. 추진위 측은 이달 안에 서류를 보완해 사전타당성 조사를 신청한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A 구역은 정비구역 지정이 되지 않아 아직 재개발까지 갈 길이 먼 지역인데도 편법적인 토지 거래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이곳 일대는 최근 국토교통부의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 후보지로 선정되면서, 정부 주택복합사업과 민간 재개발 사이에서 혼선까지 빚어지고 있다.

이 구역에서 현재 활개치는 편법 토지 거래는 재개발 아파트 분양권 획득을 목적으로 한 지분 쪼개기(필지 분할) 방식이다. 취재진이 일대 토지 등기부등본을 직접 확인한 결과 30여 명이 한 주택 필지를 쪼개 매입한 사례도 발견했다. 해당 필지는 주택가에 위치한 1986㎡ 면적의 토지로, 32명이 정확히 62.0625㎡씩 같은 값을 주고 토지를 쪼개 사들였다. 토지 소유자 중에는 만 19세인 2002년생도 포함돼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들이 토지를 소유한 시점은 추진위가 구청에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사전타당성 검토 신청서를 제출한 직후다. 재개발 사업 때 분양권 취득을 염두에 둔 투자 사례로 추정된다.

이는 ‘부산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 등에 따라 재개발 부지 내 토지 소유자가 소유한 토지의 총면적이 60㎡(주거 지역 기준)를 넘길 경우 분양 대상자가 될 수 있음을 노린 사실상의 투기 행위이다. 부산시 조례상 재개발 사업 분양 대상자는 60㎡ 이상 토지 소유자로 정한다. 이처럼 하나의 부속토지를 촘촘히 쪼개 여러 명의 소유자가 생기는 것을 ‘지분 쪼개기’라고 한다. 통상적으로 재개발 지역 내 주택 한 곳당 분양권 1개가 나오는 것이 정상이지만, 주택 1곳을 다수의 소유자가 나눠 갖게 되면 분양권이 여러 개 나오게 된다. 재개발 지분이 쪼개지면 조합원 수가 늘어나면서 일반 분양 물량이 축소돼 사업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조합원 간 다툼으로 사업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재개발 소식에 해당 구역 내 노후 아파트 실거래가도 치솟고 있다. A 구역 내 준공 45년이 지난 한 아파트 실거래가(57㎡ 기준)는 사전타당성 검토 신청서가 구청에 접수된 이후인 지난 4월 3억 6500만 원으로, 지난해 9월 1억 6400만 원에 비해 배 넘게 뛰었다. 2018년 4월 이 아파트의 실거래가는 8300만 원이었다.

이 같은 사례는 A 구역뿐이 아니다. 부산 수영구에서도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 주택 재개발이 추진되지 않는 곳의 지도가 공유되고 있는 실정이다. 부산의 한 공인중개사는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까지 그림을 그리 듯이 지도에 넣는다고 해서 일명 ‘화가’로 불리는 부동산 단타꾼들이 기승을 부린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일반 투자자들이 이를 알고 조심해야 하지만, 요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다 보니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하는 사람도 꽤 있다”고 귀띔했다.

한편 지자체는 이를 계도할 근거가 없어 애를 먹고 있다. 부산 한 구청 건축과 재개발계장은 “민간의 영역이라 지자체가 막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지분 쪼개기 편법에 따른 지역 주민 피해를 막기 위해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정비 사업 전문 PM 업체인 ㈜새디새집 김정수 회장은 “외부 세력의 편법 쪼개기를 막기 위해 실거주 2년 이상 조합원 자격 부여 , 투기꾼 세력 강력 처벌 등의 내용을 담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곽진석·이상배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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