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월드엑스포 성사 위해 남다른 ‘부산 역사’ 보여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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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소장

“2030 부산월드엑스포 성사를 위해 ‘이것’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김한근(64)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소장은 부산월드엑스포의 열띤 유치전을 아쉬운 시선으로 보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머리를 맞대 맞춤형 유치전략을 구상하고 있지만, 한 가지 빠진 점이 있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첫 격전지 등 유적 곳곳에
주택 개발로 흔적 사라져 재조명 필요
근현대사 주민 증언 등 기록화 시급

“인구 감소 등으로 ‘제2도시 타이틀’까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부산월드엑스포는 매우 큰 기회입니다. 세계적인 도시들과 맞붙으려면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역사 정체성’을 어필해야 합니다. 역사성은 그 도시의 뼈대이자 내재한 저력입니다. 일반 문화예술과 달리 트렌드나 외부 이벤트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지금 부산이라는 도시의 역사성은 무엇입니까. 엑스포에 발맞춰 어떤 정체성을 만들고, 어떻게 보여 주려 하고 있습니까.”

김 소장이 바라보는 부산 역사는 남다르다. 임진왜란 첫 격전지, 일제강점기 군사 요새, 첫 개항 도시, 한국전쟁 당시 피란수도, 부마민주항쟁 등 민족의 아픈 역사를 함께한 도시다. 옛 부산항을 휘감는 원도심에는 지금도 지하벙커, 방공호, 해안축대 등 근현대사 유적이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 최근 태종대에서 목격돼 관심을 끌었던 ‘대형 지하벙커’는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구축한 해안포진지 시설 중 하나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은 단순히 흔적만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사람 이야기’가 녹아 있습니다. 과거의 관광이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였다면 언제부턴가 이야깃거리, 기억거리가 더해졌거든요. ‘다크투어리즘’(비극적 역사나 재해·재난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여행)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세계적인 휴양지에 역사성까지 더하면 어느 도시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겁니다.”

김 소장은 역사 정체성 확립의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주택 개발로 유적은 점점 사라지고, 증언할 주민들도 고령에 접어든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근현대사의 경우, 흔적은 많은데 지자체 차원에서 제대로 된 조사나 관련 사업이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목적, 용도, 연대별로 나누고 과거를 기억하는 주민 증언을 듣는 등 기록화 작업이 시급합니다. 엄청나게 큰 예산이 들거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고 난 뒤에 이 역사를 어디에, 어떤 식으로 배치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김 소장은 마지막으로 일제강점기 유적에 대한 일각의 ‘보존 반대’ 시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뒤늦게 후회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게 그의 확고한 생각이다.

“아픈 역사를 다시 들추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역사가 있다면 함께 나누고 상처를 아물게 하자는 겁니다. 흔적이 사라지고 나면, 후대가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수난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증명할 수 있을까요. 이 역사를 미래에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할지 모르는 일이지 않습니까. 어쨌든 이 땅에 남아 있는 건 우리 역사입니다.”

글·사진=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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