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불편하게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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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편리함은 긍정의 의미와 연결된다. 그래서 편리하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편리함이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본다. 이를테면 시장이나 마트를 갈 때, 비닐봉지 대신 가지고 간 장바구니를 이용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 일회용 컵 대신 자신이 가져온 텀블러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띈다. 모두 건강한 지구를 지키기 위한 소소하면서도, 의미 있는 몸짓들이다. 지구 온난화로 지구의 미래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불편하게 살기’로 개선하고 이겨 내 보자는 일상의 움직임이다.

건축에도 이런 ‘불편하게 살기’를 보여 준 건축가가 있었다. 최근 별세한 ‘채 나눔 건축’ 이일훈 건축가가 그랬다. ‘채 나눔’은 옛 조상들처럼 안채, 사랑채, 별채, 이런 형태로 집을 나누자는 의미다. 그의 ‘채 나눔 건축’은 ‘불편하게 살기’ ‘밖에 살기’ ‘(동선)늘려 살기’를 기본으로 한다. 그는 아파트나 주상복합 건물처럼 한 공간에 모든 것이 집약된 집은 편리하지만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불편하게 살기를 제안했다. 환경이나 공해 문제는 편하게만 살려고 하는 것의 후유증이므로 자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불편함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이 건축가가 설계한 경기도 화성시 외곽 ‘자비의 침묵 수도원’은 ‘불편하게 살기의 의미와 가치’를 말해 준다. 이 수도원의 공간 배치는 특이하다. 어쩌면 불편하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고나 할까. 그 불편한 대표적인 공간이 폭 75cm 정도의 복도다.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이기에, 두 사람이 만나면 누군가는 반드시 양보해야 비켜갈 수 있다. 이런 불편은 ‘양보’와 ‘배려’를 가르친다. 처음에는 수사들도 무슨 이런 공간을 만들었느냐고 나무랐지만, 지금은 다들 좋아한다고 한다. 또 하나는 수도원의 여러 공간이 의도적으로 먼 거리를 유지하며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수사들이 다른 공간으로 갈 때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무조건 밖으로 나와야 한다. 건강도 챙기고 자연과 접하는 삶도 누릴 수 있게 한 건축가의 의도다.

불편은 편리를 추구하는 시대에 호응받지 못하는 가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불편함은 때론 지구의 건강(환경)도 지키고, 내 건강도 지킨다. 지구와 내 건강을 지키는 건 우리가 조금 불편해진다면, 불편함을 실천한다면,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정달식 문화부 선임기자 do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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