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밥(食)에 앞서 믿음(信)이라 했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논설위원

지난해 4월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제1차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정부는 선별 지급, 민주당은 전 국민 지급을 주장했다. 갈등 끝에 당정은 소득 하위 70%에게만 지급하기로 타협했다. 70%의 기준은 건강보험료(건보료). 하지만 건보료로는 소득을 정확히 판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형평성 문제가 불거졌고, 이 때문에 국민적 혼란이 커지자 당정은 전 국민 지급으로 돌아섰다.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과 정부는 올 2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담긴 재난지원금을 소득 하위 80%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기준은 역시 건보료다. 소득 하위 70%에서 80%로 대상이 늘어났을 뿐, 지난해와 달라진 건 없다. 그럼 그때는 틀렸고 지금이 맞다는 건가.

재난지원금 대상 소득 하위 80% 결정
지난해 1차 지원 때는 전 국민에 지급
같은 상황인데도 다른 기준 혼란 초래

건보료 바탕 소득 판별 정확하지 않아
형평성 논란 불가피, 정밀 대안 찾아야
국가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 잃을 수도


정부는 4인 가구일 경우 연 소득 1억 536만 원 정도가 기준이 될 것이라지만 정확한 건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일반 국민으로선 여전히 누가, 언제, 얼마를 받는지 깜깜할 뿐이다. 정부는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소득 하위 80% 기준선을 확정할 예정이다.

불만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왜 80%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 재난지원금은 4인 가구의 경우 100만 원 정도 받을 수 있는데, 소득은 별 차이 없는데도 미세한 몇 퍼센트 차이로 못 받는 가구가 생긴다. 이 박탈감을 어쩔 것인가. 맞벌이 가구도 문제다. 아이 둘 둔 부부가 각자 5500만 원의 연봉을 받는다면 이번 재난지원금은 못 받을 가능성이 크다. 여건상 어쩔 수 없이 맞벌이하는 경우라면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소득은 높지만 재산이 적은 가구는 못 받고, 재산은 많은데 소득은 적은 가구가 받는 사례도 나올 수 있다.

소득 상·하위 구분을 건보료로 정하는 것도 문제다. 1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 직장가입자의 경우 건보료에 최근 소득이 반영되지만, 소규모 사업장의 직장가입자나 지역가입자의 경우 지난해 소득을 기준으로 건보료가 책정되어 있다. 최근에 유달리 소득 상황이 나빠졌는데도 지원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 소득만 보는 직장가입자와는 달리 지역가입자는 소득과 함께 집·자동차 등 자산까지 포함해 산출하기 때문에 불리하다.

문제는 이 모든 지적들이 지난해에도 똑같이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당정이 전 국민 지급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런 비판을 견뎌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1년 이상 지났는데도 아무런 대안도 없이, 스스로 쓰지 않기로 결정했던 건보료 기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80%’라는 한계선에도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다. 연 소득 1억 원이 넘는 맞벌이 부부를 지원 대상에 포함할 방침이라거나, 청년이나 장애인에 대한 지원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민주당에서 공식적으로 나오고 있다. 부동산이나 금융 등 자산에 대한 배제 기준도 조만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갖가지 예외 조항으로 결국은 누더기 기준이 될 수도 있게 됐다.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는 탄식이 나올 만하다. “지원 대상 선정에 행정력을 다 소비하겠다”며 걱정하는 공무원도 많다.

소득 상위 20%에게 재난지원금에 준하는 신용카드 캐시백 혜택을 주는 마당에, 당초 지원 대상에서 배제한 이들에게까지 이런저런 조건을 달아 지원하게 되면 거기에 무슨 선별 지원의 의미가 있을까. 이 때문에 일각에선 당정이 다시 전 국민 지급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는 지난 2일 “내수 진작 효과를 위해 전 국민에게 보편 지급하라”는 논평을 냈고, 민주당 안에서도 ‘돈 주고 욕먹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전 국민 지급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나라 곳간을 걱정하며 선별 지원을 고집하는 정부의 충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따른 형평성 논란과 분열은 마땅히 최소화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재난지원금을 못 해도 추석 전에는 지급하려는 모양인데, 시간에 쫓겨 급급한 것보다 좀 늦더라도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정밀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선별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이의를 제기하라고 하지만 이는 잘못에 대한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짓이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혼란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다 자칫 국가 정책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잃게 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공자는 정치의 세 요소로 병(兵), 식(食), 신(信)을 들며, 굳이 버려야 한다면 병을 버리고, 다음으로 식을 버릴지언정 신만은 끝까지 지키라고 했다. 밥에 앞서 믿음이라는 이야기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정치는 이미 정치가 아닌 것이다. 납득할 만한 명분 없이 그때그때 바뀌는 정책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kmyi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