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미혜의 젠더렌즈] 윤여정과 이혼 여성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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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법인 새길공동체 이사장

최근 20, 30대도 열광하는 ‘탈 꼰대의 모델’ 하면 생각나는 여성이 있다. 이혼녀로서,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로서, 생계형 배우로서 누구보다 솔직하고 성실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노년기를 보내고 있는 배우 윤여정 씨다. 그는 이제 동서양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다. 영상 매체 등에서 윤 씨의 얼굴이 비칠 때마다 ‘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고 하는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릴 정도이다. 그녀가 이혼의 어려움 속에서도 두 아들을 키우며 소신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강한 정신력 덕분도 있겠지만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혼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결혼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의 한 방법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이혼은 결혼 생활의 문제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인생의 실패’로 인식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러한 편견 속에는 경제적 부양자와 가사노동 전담자가 상호 의존하는 핵가족 위주의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잠재해 있다.

이혼은 더 이상 특별한 사건 아냐
결혼 생활 문제 해결 방법일 수도
온전히 독립적인 새 삶 이끌어야

특히 전업주부로 살아온 여성의 경우 자신의 존재 가치와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혼과 가족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된다. 사회적인 편견과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이혼을 선택하는 것은 결혼제도 속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혼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이들을 차별과 소외의 대상으로 머물게 하는 측면이 있다.

이혼에 대한 관점은 이혼을 일탈로 규정하는 병리 모델 관점과 불가피한 사회현상으로 규정하는 위기 모델 관점으로 나뉜다. 최근에는 위기 모델을 수용하는 경향이 높아지면서 가족학자들은 이혼을 결혼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전환 과정으로 보고 있다.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이혼율은 이러한 이혼에 대한 관점의 변화와 연관이 있다. 특히 여성의 교육 기회 증가와 사회 진출 확대로 평등한 부부관계에 대한 인식은 높아진 반면, 기존의 권력을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 남성과의 견해 차이가 여성으로 하여금 이혼을 결심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고 보인다.

이혼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결혼 이후 이혼에 이르기까지 나타나는 여러 과정을 통해 어렵게 도달하게 되는 경험이다. 다시 말해, 이혼은 결혼에 관한 모든 것이 끝나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심리, 사회, 경제, 자녀 양육 등의 문제를 내포하는 복합적인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성장의 발판이 되기도 하고 후회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주위에 이혼 후 ‘인생의 실패자’라는 편견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성장의 길을 모색했던 한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은 가부장적 결혼 속의 모성이 자식과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는 잘못된 애착을 경험하게 했다고 한다. ‘나 혼자만 참으면 가족이 모두 행복할 수 있다’는 자신의 인내는 결과적으로 자녀를 고통과 불안 속에 살게 했다고 말한다. 또한 남성 중심적인 사회구조는 여성들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불평등한 구조 속에 안주하도록 해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스스로 살기’에 대한 고민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혼 후 스스로 살기 위해 일하고 돈을 버는 일은 이 여성에게 생존의 문제가 되었으며 자신의 삶을 온전한 자기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자신의 삶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했으며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고 사회적 자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여성은 자녀와 함께 갈등과 문제를 극복하며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일을 하면서 대인 관계를 확장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회적 존재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밖의 일’을 잘 모르고 사는 것이 여성의 기본적인 행복이라는 태도에서 이제는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하며 ‘세상의 이치’를 아는 사회적 존재로 거듭났다고 한다.

이렇듯 이혼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미래의 삶은 다르게 펼쳐질 수 있다. 이혼 후 온전하게 독립적인 삶은 ‘새로운 삶’으로 다가올 수 있으며 좀 더 긍정적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를 가지게 한다. 이제 이 여성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어려움들을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계속 성장해 나갈 자신을 믿으며 행복하고 아름답게 늙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다. 윤여정 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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