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장애·비장애 구분 없는 예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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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 문화부 부장

‘어? 어디서 비슷한 그림을 봤는데.’

드라마 ‘마인’ 2회 방송을 봤을 때다. 시계의 뒷면을 그리는 발달장애 작가를 갤러리 대표에게 소개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아, 온그루! 부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장애 예술인 창작 공간 온그루에 갔다가 시계를 그린 작품을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남부산농협, 청도오리백숙, 백조세탁소… 작가가 방문한 가게에서 본 시계들로 화면을 가득 채운 그림, 시계 뒷면을 그린 그림 등 재미있고 색다른 그림을 그린 주인공은 온그루 입주 단체인 우리아트 윤진석 작가였다.

드라마에 ‘부산 장애작가’ 그림 등장
문화다양성 차원에서도 예술적 가치
지원법 제정 긍정 변화 속 아쉬움 여전
‘무장애 예술 환경’ 구체적 정책 기대

윤 작가를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아트페어 현장에서 만났다. 그림을 눈여겨봤던 작가를 직접 만나니 반가웠다. 방송에 나온 그림은 작가의 아이디어를 받아서 제작진이 그린 것이며, 이후 드라마에 작가의 실제 작품이 초고가의 그림으로 등장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봤다. 황성제 작가는 1600개 로봇 캐릭터가 담긴 파일 첩이 집에 10권 정도 있다고 했다. 1만 6000개 이상의 캐릭터를 창작했다는 말이 된다. 색면 추상, 면 분할 등 발달장애 작가들의 뛰어난 집중력이 담긴 작품들은 기존의 작품과 다른 매력을 보여줬다. 특별전을 기획한 한젬마 씨는 장애인이 자신의 재능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장애가 있어도 아무 문제 없이 문화예술의 주체가 될 수 있고, 장애예술인이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뭘까?

‘2018 장애인 문화예술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예술인의 정책 만족도는 47.7점에 그친다. 당시 장애예술인의 74.5%가 예술적 역량 강화를 위해 전문적 예술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전문 교육인력은 부족하고 교육기관은 없다고 답했다. 집단심층면접에서는 예술활동의 경제적 부담과 장애예술에 대한 인식 부족, 지원사업 관련 정보 접근성 강화, 예술활동의 일자리 연계를 통한 자립 환경 조성, 각 장애유형에 따른 단계별 교육체계 구축 등이 거론됐다.

2020년 12월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지원 관련 예산도 늘었다. 이런 영향으로 장애인 문화예술활동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누적된 모든 문제점이 단기간에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장애예술인의 현황 파악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문제도 해법도 아는 만큼 보인다.

장애인 실태조사 자료를 읽으면 장애예술인의 활동 분야가 서양음악, 문학, 미술에 쏠려 있음이 보인다. 해당 분야가 활발하다는 뜻도 되겠지만, 동시에 다른 분야로의 진출에 ‘장벽이 있음’으로도 풀이된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장애 유형별로 각 예술분야의 정책 대응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부산의 경우 2019년부터 3년간 매년 4억씩 국비를 지원받아 다양한 장애인 문화예술활동 지원 사업을 펼쳤다. 올해로 국비 지원이 끝나는데 그다음에는 사업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 현장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장애예술인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장애인 예술 테이블 토크-오후 세 시 프리퀀시’는 7월 한 달간 매주 금요일 오후 3시에 열린다. 지난 3년 동안 진행된 부산문화재단 장애인 문화예술지원사업 참여자와 전문가가 모여 지역의 장애예술인 정책 마련을 위한 담론을 만들어간다. 이들은 인권부터 매개자, 배리어프리, 장애예술인의 노동, 장애인 예술 창작공간 등에 대해 폭넓게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장애예술인을 전문 예술인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확산도 중요하다. 올 상반기에 발달장애, 정신장애 등을 가진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아웃사이더 아트 전시를 개최한 갤러리의 대표는 위대한 예술가 중에 아웃사이더 아트로 시작한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는 아웃사이더 아트가 주목을 받으면 인사이더 아트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취재 현장에서 작가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예술의 가치 중 하나가 ‘다른 시선으로 세상 보기’이다. 미처 보지 못한 것, 작은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예술가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한 작품을 통해 우리는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최근 접한 장애예술인의 작품에서 느낀 것과도 통한다.

윤진석 작가가 기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남긴 말. “작가 응원해주세요.” 그 요청에 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장애와 함께하는 예술, 장애와 비장애 구분 없는 예술을 위해 구체적인 정책으로 응답해야 할 것이다.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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