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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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대변인은 당의 공식 입장을 대신해서 전하는 얼굴이다.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꼭 거쳐야 할 필수 코스로 여겨진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민주당 부대변인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2008년 한·일 정상회담 직후 요미우리신문 등은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가 일본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쓰겠다고 하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라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발뺌했다. 그러자 대변인 이재명이 나서서 “우리 대통령이 절대 그랬을 리 없다”며 요리우리신문을 상대로 국민이 참여하는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판결 과정에서 진실을 파악하자는 취지였다. MB가 했다는 말을 줄인 ‘지곤조기’는 사자성어로 남았고, 이재명은 대권 주자로 성장했다.

국민의힘 대변인 선발 토론 배틀이 대박을 터트렸다. TV조선이 방송한 토론 배틀 ‘나는 국대다’ 시청률은 5.742%로 당일 비지상파 전체 1위를 기록했다. 비슷한 시간대에 중계된 민주당 대선후보 선발 과정보다 야당 대변인 토론 배틀이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취업준비생이던 20대 양준우 씨는 토론 실력으로 단번에 제1 야당 대변인에 취업해 화제가 되었다.

짧은 논평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은 쉽지 않다. 명대변인 하면 ‘유행어 제조기’로 불렸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떠오른다. 그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정치권에서 처음 사용했다. 일본에서 노회한 정객을 지칭하는 ‘정치 9단’도 국내에서 가장 먼저 언급했다. 1990년의 경제 위기 상황에 대해 표현한 ‘총체적 난국’은 더욱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는 말년에 골프장에서 캐디를 성추행하고는 ‘딸 같아서 그랬다’는 씁쓸한 유행어를 남기고 사라졌다.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대변했다고 할까.

미국에는 정당 대변인 자체가 없다. 각자가 헌법기관인 소속 의원들의 다양한 견해를 대변인 한 사람이 임의로 대변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당 대변인은 권력 집중식 비민주적 정당 운영의 상징적 존재라는 견해도 있다. 당내에 엄연히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하는데도 소수 당직자의 회의 결과를 당론으로 정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나팔수’들의 저질 발언 공방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임승호 신임 대변인은 “국민의힘이 과거의 모습으로 회귀하려는 모습이 나온다면 가장 앞장서서 비판하겠다”고 약속했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고 했다. 정치권의 진짜 변화를 기대한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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