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황희·이준석, 그 지독한 수도권 일극주의

노정현 기자 jhno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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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현 편집국 부국장

그들의 살아온 이력을 보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서울서 초중고를 나오고 서울서 생활하다 국회의원, 장관, 당 대표를 지내고 있으니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애환 따위는 알 리가 만무하다.

그래도 세상이 변한 만큼 이제는 지방분권, 문화분권, 국토균형 발전의 중요성을 무시하진 못하리라 내심 기대했던 것이 참으로 순진했다.

두 사람의 뼛속 깊이 박혀 있는 수도권 일극주의 인식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황희라는 자와 국민의힘 대표를 지내고 있는 이준석이라는 자 이야기다.

이건희 기증관 지방발전보단 국익

황희 논리 뼛속 깊이 수도권 일극주의

가덕도신공항, 무안공항 꼴 우려된다

이준석도 수도권언론 국토부 논리 답습

그래도 지방이 살아야 한다 외쳐야

지방민 두려워하는 세상 빨리 올 것

황희라는 자가 이건희 기증관의 입지를 서울로 확정 발표하면서 내뱉은 말들은 귀를 의심케 한다.

공모절차를 왜 거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역 유치 열망이 커지고 경쟁이 더 치열해질까 봐” “탈락하면 지역의 허탈감이 더 클까 봐” 등의 궤변을 늘어놓더니 급기야 수도권 일극주의의 본색을 그대로 드러낸다.

“국민의 문화적 향유, 이 가치를 가장 가운데 놔서 기증관의 입지를 서울로, 또 지방 발전이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게 국익이고 국가 전체의 이익이라고 판단해서 서울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수도권 집중의 폐해로 인한 각종 부작용과 지방 소멸 위기로 인한 국가경쟁력 저하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마당에 지방의 발전과 국익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천박한 인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발언이다.

문화 선진국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경우 루브르박물관을 탄광촌이던 랑스에, 퐁피두센터 분관을 국경 군사도시인 메스에 설치해 전 세계 예술인과 관광객이 찾아오는 세계적인 예술문화도시로 거듭나게 했다는 사실을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어 보인다.

이런 자가 지방분권과 국토균형 발전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문화정책을 총괄하고 이건희 기증관의 입지를 뒤에서 좌지우지했으니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정면에서 걷어차 버린 꼴이기도 하다.

가덕도신공항이 무안공항 꼴 날 수 있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해대고 있는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이라는 자도 수도권 일극주의에 갇혀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공항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며 한 자락을 깔고 있지만 “현실성이 있는지 따져 봐야 한다” “수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등등의 태클을 걸고 있다.

그러고는 언론 인터뷰 때마다 “동남권 신공항이라고 하면 서남권 신공항으로 불렀던 무안공항 꼴 나지 않아야 한다”며 가덕도신공항을 소위 고추 말리는 공항으로 폄훼해 온 수도권 언론과 국토교통부의 논리를 그대로 들이대고 있다.

코로나 이전 2018년 연간 이용객 50만에 불과한 무안공항을 이미 1700만 명을 돌파한 김해공항의 수요를 받아안을 가덕도신공항과 비교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공부가 덜 되어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국토부 내 항공 마피아와 국적 항공사, 수도권 언론의 집요한 방해로 미국과 유럽 등 장거리 노선을 타기 위해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부울경 주민이 2018년 기준 연간 556만 명에 달하고 이들이 길거리에 내버린 돈만 1년에 3325억 원에 달한다는 점을 또다시 말해야 되는 현실이 서글플 정도다.

가덕도신공항이 부산항 신항과 철도를 연결한 트라이포트의 핵심이자 부울경 메가시티의 핵심 인프라로 국토균형 발전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것은 지난 수십 년간의 논쟁 끝에 일단락 지어진 사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덕도신공항에 대해 아직도 검토해야 할 사안이 많다며 당내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힌 것이나, PK-TK 간 갈등이 우려된다며 첨예한 지역갈등 문제를 다시 들고 나오는 것도 그 기저에는 ‘가덕도신공항=무안공항=고추 말리는 공항’이라는 수도권 일극주의 인식이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그대로 방증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자기 위치가 종편 방송에 나와 개인 생각을 늘어놓던 일개 패널이 아니라 국가 중요 정책에 대해 대안과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제1야당의 대표임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세계적인 미술관과 공항은 오로지 서울에만 있어야 한다는 황희와 이준석이라는 자의 인식에서 보듯, 지방분권과 국토균형 발전의 갈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하다.

그래도 지방민들은 포기하지 않고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줄기차게, 또 소리 높이 외쳐야 한다. 그래야 서울에서만 자라 고관대작에 이른 이들이 정책결정을 함에 있어 ‘아차, 지방민들이 뭐라고 할까’ 두려워하는 세상이 한 발짝이라도 더 빨리 오기 때문이다.


노정현 기자 jhno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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