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입법 최대 걸림돌은 지원 인력과 전문성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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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일꾼' 성적표] 3. 입법 환경 총체적 부실

부산 지자체 조례 10개 중 9개가 모방조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기초의원에 지원되는 입법 인력과 시스템 미비가 꼽힌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2년 만에 대대적으로 지방자치법이 개정됐지만, 반쪽짜리 개정에 그쳐 ‘기초의회 무용론’을 해소시키기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부산일보>가 민선 8기 부산 기초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의정활동과 입법환경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다. 지난달 17일부터 2주 동안 진행된 이번 설문조사에는 부산 기초의원 182명 중 116명(64%)이 답했다.


부산 구·군 전문위원 달랑 42명
1명이 의원 4.3명 지원 ‘허덕’
통상 퇴직 앞둔 공무원이 맡아
전문성 떨어지고 적극성도 부족
의원들도 지원 부족 아쉬움 커
자체 인사권 놓고 지자체와 갈등

■10명 중 7명 “입법 지원 부실”

부산 기초의원 10명 중 7명은 현재 입법 지원 등 입법 환경에 만족하고 있지 못하다고 답변했다. 응답한 의원 4명 중 1명 (25.4%)만 현재 입법환경에 만족(매우 만족,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나머지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응답했다. 특히 입법에 있어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요소(복수응답)로는 응답의원 70%가 ‘입법 지원 조직의 전문성 및 인력 부족’을 꼽았다. ‘내부 정치세력 간 갈등’(55.2%), ‘상위법에 의한 제약’(54.3%) 등이 뒤를 이었다.

의원들은 상위법에 어긋나지 않는 조례를 발의하고 이를 집행부와 내부 정치세력을 상대로 설득하기 위해서는 입법 과정과 법 제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지원할 만한 인력과 시스템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광역의회와 달리 전문성을 갖춘 외부인력이 없고 의회 인사권이 집행부로부터 독립되지 않아 많은 부분에서 견제를 받는다는 것.

한 기초의원은 “사실 기초의원의 전문성 부족에 대한 지적이 많은데, 기초의회의 부실한 지원 시스템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기존에 알던 분야에 대해 입법을 하려고 하면 겸직이나 특혜시비 등에 휘말릴 수 있어 모르는 분야를 입법하는 경우가 많은데,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공부하려 해도 전문적인 지원이 전무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의원 4.3명당 지원 인력 1명

입법 환경 중 가장 개선되어야 할 부분으로 응답자들은 ‘전문위원 규모와 전문성 강화’(72.4%)를 꼽았다. ‘전문위원’은 기초의회의 입법 활동 등을 지원하는 인력으로, 대부분 지자체 공무원이다. 통상 퇴직을 앞둔 공무원이 전문위원으로 임명되는 경우가 많아 적극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입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도 부족하다. 15일 기준 부산 16개 지자체 의회사무과 전문위원은 42명으로, 이 중 외부 전문가를 채용한 경우는 해운대구, 동래구, 북구, 부산진구 각각 1명 씩이다. 이들은 대학 학사 학위 소지자들로 관련 분야에서 3년 이상 근무하거나 학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지 않은 경우 5년 이상의 관련 실무 업무 경험이 있는 자들이다. 외부 전문가를 채용하지 않은 경우는 공무원이 그 자리를 메운다.

전문성도 떨어지는 데다 전문인력의 규모도 업무량에 비해 한참 모자라다. 부산 16개 기초의회 평균 전문위원 1명 당 의원 4.3명을 담당한다. 국회나 광역의회와 달리 기초의회의 경우 입법지원기관이나 보좌관제도 등이 운영되지 않는다. 그 탓에 기초의회 소속 전문위원은 조례안, 예산 및 결산안, 승인안, 건의안, 결의안, 청원, 의견제시의 건 등 위원회에 회부되는 모든 안건에 대한 검토와 보고뿐만 아니라 소속위원들의 의정활동을 돕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한 전문위원은 “조례 하나를 발의하려고 하면 타 지자체 제정 여부부터 상위법 검토 등 일반 행정업무까지 일이 무한대로 늘어난다”고 말했다. 동래구의회 천병준 의원은 “전문위원이 워낙 하는 일이 많아 추가로 업무를 부탁하기 어려워 기초적인 조사나 행정업무를 의원들 스스로 공부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구청직원이 구청 견제 업무

전문위원 인력 부족과 전문성 미비는 기초의회 인사권 독립 문제와 맞닿아 있다. 지방자치법 등에 따르면 현재 기초의회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기초자치단체 즉, 집행부 소속의 직원이다. 기초의회에서 일할 직원의 인사를 구·군청장이 결정한다는 의미다.

기초의원들은 의회의 일을 집행부 소속 직원들이 맡다 보니 의회를 위해 일하기보다는 집행부를 대변하기에 급급하다고 설명한다. 가령 전문위원에게 입법조례를 문의했더니, ‘예산반영이 어렵다’,‘상위법과 충돌한다’는 소극적인 답변만 돌아오는 식이다. 한 기초의원은 “어떻게 해서든 입법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찾기보다 마치 정해진 법 테두리 안에서 진행되는 행정업무처럼 입법업무를 대한다”고 전했다. 또 “예산이 수반되는 조례는 집행부가 승인해 주지 않을 거라는 식으로 집행부를 대변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기초의회 인력도 집행부의 인사 일정에 맞추어 이뤄지다 보니 한 자리에서 전문성을 쌓아야 하는 전문위원이 1~2년마다 자리를 옮겨버리는 문제도 생긴다. 국회나 광역의회 같은 경우는 의원 한 명에게 여러 명의 전문인력들이 붙고, 인사권도 의회가 행사해 독립성이 보장된다.

게다가 예산 수반 조례는 집행부 승인을 받기 어려워, 예산 지원이 빠진 선언적 조례가 양산되기도 한다. 한 기초의원은 “꼭 통과시키고 싶은 조례가 있는 경우 오죽하면 구청에 요청해서 구청장 이름으로 발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의원들은 기초의회의 인사권 등을 포함한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기초의회 인사권이 독립되면 집행부 입장에서 직원의 인사 폭이 줄어든다. 즉 ‘갈 수 있는 자리’ 자체가 줄어 인사권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일례로 지난해 해운대구 의회는 공무원이 맡아오던 구의회 전문위원직을 외부 전문가가 맡을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하면서 공무원 노조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당시 해운대구의회는 “기초의회의 전문성 강화와 효율적인 행정 견제를 위해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끝-

박혜랑·이상배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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