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첫 사제 김대건 신부, 아득한 고난의 대장정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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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탁희성 화백의 김대건 일대기 그림 중 ‘옥중영세’.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제공 고 탁희성 화백의 김대건 일대기 그림 중 ‘옥중영세’.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제공

부산 금정구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에서는 지난 5일부터 12월 31일까지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전 ‘내면의 목소리를 신앙의 목소리를’이 열리고 있다. 김대건 신부 관련 200여 점이 전시 중이다.

기념전이 열리는 2층 특별전시실에 들어서니 ‘성 김대건 신부 탐색로’라는 큰 지도가 눈에 들어온다.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1821~1846) 신부의 10년간 행로는 동아시아에 장대하게 걸쳐 있다. 지도 위에 선으로 그어진 그의 행로가 한국 천주교를 토착화시킨 아득한 고난의 대장정 같다.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전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연말까지


동아시아까지 이어진 10년 행로

일대기 그림, 조선 전도 등 전시


그의 행로는 당시 조선의 지평에 없던 필리핀 마닐라까지 이어진다. 김대건은 1836년 15세 때 신학생이 되기 위해 한양에서 만주-베이징-난징을 거쳐 중국 남쪽 선교사들의 거점인 마카오까지 걸어서 갔다. 지향점을 지닌, 당대 조선인 최장의 도보 장정이었다. 그리고 마카오 민란이 일어났을 때는 마닐라로 건너가 신학 공부를 했다. 이후 타이완을 거쳐 만주에서 추위 굶주림 병고와 싸우며 다섯 번에 걸쳐 조선 귀국을 탐색하다가 여섯 번째로 평양을 거쳐 한양에 왔다. 여기서 그친 게 아니다. 배를 타고 풍랑 속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상하이로 다시 되돌아가 사제 서품을 받은 다음, 또다시 상하이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표류했다가 한양으로 들어가 전교를 하고 해로를 개척하다가 25세 때 군문효수로 순교했다. 1846년 9월 한성 새남터였다. 이후 그가 개척한 백령도 부근의 해로는 조선을 향한 선교사들의 입국로가 되었다.


이구섭 문화관광해설사가 김대건 신부의 행로를 설명하고 있다. 최학림 기자 theos@ 이구섭 문화관광해설사가 김대건 신부의 행로를 설명하고 있다. 최학림 기자 theos@

이구섭 한국순교자박물관 문화관광해설사는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지 40일이 지나 이민식이라는 청년이 시신을 몰래 파내 경기도 안성 미리내로 옮겨 안장했다”고 했다. “김대건 신부의 시신은 1901년 발굴돼 서울로 옮겨지고, 한국전쟁 때는 밀양으로 옮겨졌어요. 현재 김대건 신부의 유해는 로마 파리 마카오 등을 비롯한 국내외 200여 곳에 분산돼 한국 가톨릭 역사의 증표가 되고 있습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곳곳으로 이어진 그의 행로는 그렇게 고난과 순교의 증표가 되고 있는 거다.

한국 천주교는 선교사에 의해 전래된 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유례없이 백성들 스스로가 신앙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이 한반도 사람들의 기질이요 영성일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창설은 1784년이었다. 베이징에 가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의 집전으로, 이벽 정약용 권철신 등을 대상으로 조선 최초의 세례식이 열린 것이 그해였다. 이후 100년간 1만여 명에 이르는 신앙의 피를 강토에 뿌린 순교의 역사를 통해 천주교는 새 빛을 갈구하던 조선 후기에 인간 평등과 강력한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하면서 철저하게 토착화했다.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특별전 포스터.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제공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특별전 포스터.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제공

한국 천주교 토착화 역사, 103위 순교 성인을 대표하는 인물이 김대건 신부다. 마침 탄생 200주년에 맞춰 김대건 신부는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됐다. 그의 삶은 짧아서 위대했다. 그의 신앙과 순교는 세계사적 지평 위에 놓여 있다. 이번 전시는 그 점을 공유하려는 기획이다. 김대건 신부의 집안은 4대 10명이 목숨으로 신앙을 증명한 순교자 집안이었다고 한다. 특별전에는 외국어에 능통하면서 섬세하고 영민한 면모를 보여주는 ‘조선 전도’(독도가 그려져 있다)와 박해 당시 조선 백성들의 형벌 고통을 글과 그림으로 전한 서한들, 그리고 고 탁희성 화백의 김대건 일대기 그림 11점 등이 전시돼 있다.

배선영 한국순교자박물관장은 “조선의 첫 사제, 청년 김대건의 사제 서품으로 한국 천주교회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며 “전시를 통해 이제 우리가 걸어야 할 진리 나눔 사랑의 길을 새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051-583-2923.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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