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인문학 기행] 포르투갈 리스본, 오디세우스가 건설한 뱀 여왕의 도시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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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인문학 기행] 포르투갈 리스본의 유래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납치하는 바람에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그리스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는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는 전쟁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트로이에 가지 않으려고 미친 척했지만 거짓말을 들켜 할 수 없이 끌려가야 했다.

오디세우스는 지략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말 한 마디로 수많은 변화를 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때로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다. 그의 거짓말은 ‘나는 항상 선을 행하고 있다’는 믿음에서 나왔다. 한마디로 ‘선의의 거짓말’ ‘하얀 거짓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의 목마’를 고안해 10년이나 끈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겨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지만 귀향길은 멀고도 험했다. 바다 괴물과 싸웠고 거인과도 다퉜다. 어떤 인간도 겪지 못한 온갖 희한한 일을 다 경험했다.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바로 귀국하지 못한 것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저주 때문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신의 아들인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 만든 적이 있었다. 분노한 포세이돈은 그를 죽이려 했다. 신들의 왕인 제우스가 이를 겨우 만류해 고향에 돌아가는 길을 험난하게 만드는 것으로 복수를 대신했다.


■낯선 땅에 발을 내딛다


“우르릉~ 쿠~웅, 콰~앙.”

오디세우스가 포세이돈의 저주 때문에 바다를 떠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그는 처음 보는 육지 근처로 다가가고 있었다. 엄청나게 크고 강한 번개가 육지에 내리꽂히는 걸 봤기 때문이었다.

“제우스께서 내린 번개다. 육지에 내리라는 게 그 분의 뜻인 모양이군. 나에게 시킬 일이 있으신 거야. 모두 상륙할 준비를 하라.”

제우스는 항상 오디세우스를 돌보는 신이었다. 그가 트로이전쟁에 참가하게 만든 것도, 포세이돈이 죽이려는 것을 만류한 것도 그의 뜻이었다. 제우스는 천둥번개를 다스리는 신이다. 오디세우스의 눈앞에서 번개가 내리쳤다는 것은 제우스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오디세우스와 일행은 육지에 닻을 내렸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배에서 내려 땅에 발을 내디뎠다. 해안을 벗어난 뒤에는 새로 발견한 땅을 이곳저곳 살펴보았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기후는 온화했고, 햇살은 하루 종일 따사로웠다. 곳곳에 과일이 넘쳐났고, 많은 동물이 숲에서 뛰어다녔다.

“이곳에서 며칠 묵으면서 피로를 풀고 가도록 하자. 제우스께서 이곳에서 내게 무엇을 시키시려는지 그동안 알게 되겠지.”

오디세우스는 배에서 내려 육지 깊숙한 곳에 천막을 쳤다. 오랜 항해로 지친 몸을 푹 쉬어 가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부하들도 대장의 뜻을 반겼다. 트로이 전쟁 이후 오랜 바다 생활 때문에 그들도 뼛속 깊숙이 지쳐 있었다.


■반인반사의 아름다운 여인


“괴물이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뱀인 괴물이 언덕에 나타났다.”

오디세우스 일행이 새로 발견한 땅에서 여러 날을 보냈을 때였다. 멀리 언덕 너머에 이상한 생명체가 나타났다.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뱀인 여인이었다. 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존재였다.

“도대체 저게 무엇이냐?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염소인 켄타우로스도 저렇게 괴상하진 않을 텐데….”

반인반사(半人半蛇)의 여인은 오디세우스 일행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하체가 뱀이니, 정확하게 말하면 걸어온 게 아니라 기어온 것이었다. 오디세우스는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피할 곳도 없었다.

느긋하게 다가온 반인반사는 오디세우스 앞에 섰다. 멀리서 볼 때는 흉측했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어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

“이 세상 어느 여인보다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분이시여! 나는 트로이전쟁을 마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라고 하오. 그대는 누구이신가?”

여인은 오디세우스를 한참동안이나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발개졌다. 심경에 변화가 생긴 모양이었다. 낯선 사나이를 사랑하게 된 것이었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 용감한 분이시여! 그대의 이름은 바닷바람에 실려 온 소문을 들어 익히 알고 있지요. 저는 오르피우사예요. 이 땅을 다스리는 여왕이랍니다.”

오르피우사는 오디세우스 일행을 궁으로 데리고 갔다. 그를 가장 높은 자리에 앉히고 백성들에게 고개를 숙여 왕으로 받들라고 명령했다. 오디세우스는 여왕의 궁에 발이 묶여 아예 귀국하지 못하게 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달아날 방법도 없는 처지여서 영원히 머물겠다고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여왕이 듣는 자리에서 부하들에게 달아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호통 쳤다.

마땅히 할 일이 없었던 오디세우스는 매일 왕국을 둘러보았다. 여왕의 영토는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풍요로웠다. 그는 언덕에 올라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제우스에게 맹세했다.

“여기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하겠습니다. 저의 이름을 붙여 올리소포라고 부르겠습니다. 신께서 저를 이곳에 내리게 하신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에게 도시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집을 짓고 다리를 놓고 길도 닦았다. 새 땅을 정말 사랑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오르피우사를 안심시키려는 속셈도 숨어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새 도시를 건설한다는 핑계로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몰래 지형과 날씨를 익혔다. 오르피우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달아날 수 있는 탈출 방법과 경로를 준비하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여러 해 동안 고생한 끝에 도시가 완성됐다. 백성들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화려한 도시의 모습에 매료됐다. 오르피우사는 오디세우스를 자신의 남자라고 완전히 믿게 됐다. 오디세우스의 마음은 달랐다. 그는 낯선 땅에서 괴물 같은 여인과 평생 살고 싶지 않았다. 서둘러 이른 시일 안에 달아나기 위해 마음속으로 여전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강어귀에 생긴 언덕 일곱 개


마침내 오디세우스가 올리소포에서 도망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달이 구름 속에 가려 매우 어두운 날이었다. 오르피우사 여왕은 먼 언덕으로 가서 뱀의 신에게 연례 제사를 지내는 날이기도 했다.

“오늘이야말로 달아날 절호의 기회다. 때를 놓치면 다시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해가 지면 다들 몰래 떠날 채비를 서둘러라. 물과 음식을 배에 실어놓도록 해라. 일부 선원들은 미리 가서 출항을 준비해라.”

오디세우스는 해가 지자마자 배로 달려갔다. 그가 미리 지시한 대로 각종 물품은 이미 다 갖춰져 있었다. 그가 도착하자 부하들은 서둘러 닻을 올렸다.

“불은 절대 밝히지 마라. 여왕이 쫓아올지 모른다. 어둡지만 눈으로만 뱃길을 확인해라.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어라. 바다에 나가기만 하면 여왕은 더 이상 추격하지 못하리라.”

제사를 지내러 갔던 오르피우사는 오디세우스 일행이 밤을 틈타 배를 몰고 탈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그녀는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사랑의 배신감을 달래며 타구스 강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배는 바다로 이어지는 강어귀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오디세우스, 불쌍한 여인의 사랑이여! 저를 버리고 어디로 가시나요? 저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바쳤는데 왜 당신은 배신만 남기고 떠나시려 하나요? 제발 다시 돌아오세요.”

오르피우사는 슬픔에 겨운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온 힘을 다해 오디세우스 일행이 탄 배를 추격했다. 얼마나 빨리 헤엄을 쳤던지 한 번만 더 손을 뻗으면 배 뒷부분을 잡을 수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

제우스의 뜻은 그녀의 생각과 달랐다. 오르피우사가 내민 손이 배를 잡으려는 순간 좁은 강어귀에 꼬리가 걸리고 말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앞으로 헤엄쳐 나갈 수 없게 됐다. 배는 붙잡히지 않고 바다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오디세우스, 당신의 배신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당신이 세운 도시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끝없는 저주를 퍼부으리라!”

반신반사 여왕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얼마나 흥분했던 것인지 뱀 부분인 하체가 엄청나게 커졌다. 그녀는 화를 참지 못해 몸을 덜덜 떨었다. 주변 땅이 심하게 흔들리며 위로 솟구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올리소포에는 언덕 7개가 새로 생기게 됐다. 그녀가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강어귀도 뱀 아가리처럼 변해버렸다.

오디세우스는 무사히 고향 이타카에 돌아가 왕국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올리소포에서 만났던 오르피우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후 고대 그리스인은 반인반사 여왕이 살던 곳을 오르피우사라고 부르게 됐다. ‘뱀의 땅’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오늘날의 리스본이다.


■반인반사 여왕의 정체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가 리스본을 건설했다는 전설은 여러 책에 담겨 있다. 1세기 그리스 지리학자 스트라보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 외에 3세기 로마 지리학자 솔리누스, 5세기 아프리카 출신 문법학자 마르티아누스 카펠라 등도 똑같은 전설을 언급했다.

그런데 현실은 전설과는 좀 다른 말을 한다. 현실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리스본 일대에 살았던 첫 원주민 부족으로 알려진 에스트림니오스(Estrímnios) 족이다. 로마인은 이들을 ‘오에스트림니’라고 불렀다. ‘먼 서쪽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에스트림니오스는 청동기 말기인 BC 12~8세기년 무렵에는 영토를 북쪽 끝인 갈리시아에서 남쪽 끝인 알가르베까지 넓혔다. 이들은 해상은 물론 내륙에서 상업 활동을 펼쳤다. 성채로 둘러싼 촌락에 살면서 포르투갈 중남부 지역의 여러 강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무역을 독점했다.

BC 10세기 무렵 켈트 족이 이베리아 반도로 밀려왔다. 그들은 서쪽으로 대서양까지 서서히 세력을 넓혔다. 이때 몰려온 켈트 족은 오피스 부족이었다. 오피스는 ‘뱀의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오피스 족은 에스트림니오스의 비옥한 땅을 장악했다. 북부 포르투를 지나가는 두오로 강에서 남부 리스본을 흐르는 타구스 강 사이의 땅이었다. 리스본의 경우 이들이 살았던 원주민 촌락은 오늘날 상 조르주 성과 리스본 대성당이 있는 높은 언덕에서부터 타구스 강까지 이어져 있었다.

고대 로마 시인 아베니우스는 ‘오라 마리티마’라는 시를 썼다. 유럽과 아시아 각국의 해안 도시들을 묘사한 시였다. 그는 에스트림니오스 족에 대한 내용도 남겼다. 이 부족은 뱀의 침략을 받아 쫓겨났다는 내용이다. 뱀을 숭배하는 오피스 족에게 밀려났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오피스 족은 포르투갈 설화에 많은 영향을 남겼다. 아주 아름답고 매혹적인 모우라와 관련된 내용이다. 거의 모든 옛 포르투갈 도시는 모우라 설화 한두 개씩은 갖고 있다. 설화에서 마법에 걸린 존재인 모우라는 대개 반인반사의 존재로 등장한다. 모우라는 종종 길고 멋진 머리카락을 빗으면서 노래를 부른다. 마법을 풀어주는 사람에게 보물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당시 포르투갈 곳곳에는 그리스 식민지나 그리스 무역상이 활동하던 거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인이 이곳을 오르피우사 즉 뱀의 땅이라고 부른 것은 오래 전부터 이곳의 내력과 설화까지 잘 알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그리스인은 나중에 밀려온 페니키아인에 의해 쫓겨났다. 이런 역사적 사실이 ‘바다에서 표류하다 포르투갈에 상륙한 오디세우스가 뱀의 여왕을 피해 달아났다’는 내용으로 변색됐을지도 모른다.


■페니키아와 로마의 도래


‘뱀의 도시’에 페니키아인이 몰려간 것은 BC 12세기로 추정된다. 현재 레바논 남부에 있는 옛 페니키아 항구도시 튀로스가 가디르 즉 오늘날 스페인 카디스에 식민지를 세운 게 시초였다. 그들은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올리소포에도 진출했다.

BC 2세기에 만들어진 상 조르주 성 일대와 12세기에 건설된 리스본 대성당에서 20세기에 고고학적 발굴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도자기 등 BC 10세기 무렵 페니키아 유물이 발견됐다. 현대 리스본의 중심 부분이 고대 페니키아의 무역 항구였다고 확신 있게 주장할 수 있는 증거다.

타구스 강어귀에 있는 항구인 마르 다 팔랴는 배들이 정박하기에 이상적인 장소였다. 페니키아 배들이 물건을 싣고 내리거나 식량을 공급받기에 최적의 부두였다. 이곳의 촌락은 내륙 부족들과 상업적 무역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한 거점이었다. 페니키아인은 여기서 귀금속 등 공산품을 팔고 소금, 절인 생선은 물론 고대에 유명했던 이베리아 반도 서부 지역 루시타니의 말을 샀다.

전설에 따르면 페니키아인은 주석을 사기 위해 이베리아 반도 북서쪽에 있었다는 전설적인 섬 카시테리데스에도 갔고, 영국의 콘월에도 갔다. 항해를 할 때 거점은 물론 올리소포였다.

페니키아에 이어 이번에는 로마가 몰려갔다. BC 3세기 말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페니키아의 선두주자인 카르타고를 몰아냈다. 로마인은 이곳을 펠리시타스 율리아 올리시포라고 불렀다.

로마가 자리를 잡은 이후 리스본은 더 중요한 지역으로 성장했다. 로마에서 지중해를 거쳐 영국과 유럽대륙으로 가는 해상 경로의 중간 기착지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모든 로마인에게 올리시포는 부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그만큼 무역이 많이 이뤄져 돈을 벌기 좋았다는 뜻이다. 로마인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도시에는 대형욕장, 지하 회랑, 극장은 물론 전차경주가 열린 키르쿠스까지 만들어졌다.


■올리시포에서 리스본으로


리스본의 역사를 바탕에 두고 이름의 기원을 찾아보도록 하자. 원래는 켈트어인 올리시포, 리소포에서 생긴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1세기 히스파니아 출신 지리학자 폼포니우스 멜라는 이곳을 울리시포, 같은 시대 로마 학자 플리니우스는 올리시포로 기록했다.

이곳에서 무역활동을 하던 페니키아인은 현지인이 올리소포라고 발음하는 것을 ‘알리스-우보(Alis-Ubo)’로 잘못 알아듣게 됐다. 알리스-우보는 페니키아어로 ‘안전한 항구’라는 뜻이었다.

5세기 무렵 이베리아 반도로 쳐들어간 서고트 족은 이곳을 울리시본(Ulishbon)이라고 불렀다. 또 8세기 리스본을 점령한 이슬람은 아랍어로 알-리스부나((al-Lixbûnâ) 또는 알-우수부나(al-Ushbuna)라고 불렀다. 이 이름은 나중에 리사보나(Lissabona),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리스본으로 변했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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