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엘시티(LCT) 의혹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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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지난 4·7 보궐선거 때 부산시장 선거판을 달궜던 해운대 엘시티(LCT) 특혜 분양 관련 의혹에 대한 경찰의 수사 결과가 또 논란이다. 사법 기관의 수사가 의혹을 마무리하는 마침표가 되지 못하고, 엘시티 유령은 여전히 부산 하늘을 빙빙 맴돈다. 태생부터 부산 시민의 눈에 불가사의한 프로젝트로 여겨졌던 엘시티의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이번 사건은 때마침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권한을 대폭 넘겨받은 부산경찰이 맡은 사실상 1호 대형 사건이어서 더 관심이 쏠렸다. 거기다 부산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도 정파 간 이전투구의 소재가 됐던 사안이었다. 경찰도 앞서 먼저 수사를 벌였던 검찰을 의식해서인지 초반부터 나름대로 의욕을 보였다.

최근 특혜 분양 리스트 수사 결과
부산경찰 ‘모두 혐의점 없음’ 발표

시민단체는 ‘또 미흡한 결론’ 비판
핵심인 계좌 추적 등 미실시 한계

현재 공수처도 관련 수사 진행 중
향후 결과 따라 또 큰 파장 일 수도


그런데 수사 결과만 놓고 보면 의혹을 제기한 사람만 머쓱하게 만든 꼴이 되었다. 의혹을 제기한 쪽에서 본다면 수사 결과가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듯하다.

의혹을 제기한 진정인은 내부자와 엘시티 주주로부터 확인한 내용을 제보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부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최종 결론은 ‘특혜 없음, 불법 없음, 무혐의’였다. 지난 3월부터 진정인이 제시한 특혜 의혹 분양자 120여 명의 리스트와 기존 특혜 분양 의혹이 제기된 43세대까지 합쳐 5개월 동안 범죄 혐의를 찾았지만, 결국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했다.

경찰 수사만 놓고 보면 아무런 실체도 없는데 엉뚱한 의혹 제기로 귀중한 수사력만 소모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언론과 통화에서 “진정인이 제기한 의혹, 언론이 지적한 부분까지 모두 확인했다”라며 “절대 부실이나 봐주기 수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경찰 역시 자신의 수사력을 과시할 이런 좋은 기회를 의도적인 부실 수사로 날리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말 밝혀낼 것이 없어서 아무런 결과도 내놓지 못했다고 하는데, 다른 말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남은 아쉬움까지 사그라지지는 않는다. 그동안 엘시티 관련 의혹이 말끔히 해소된 적이 없었던 터에 이번 사안의 수사 결과를 시민들이 쉽게 받아들이기엔 여전히 마뜩잖다.

당장 시민단체들은 미흡한 부분을 지적하며 비판한다. 시민단체가 제기하는 문제가 모두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부산의 대표적인 의혹 사건이라면 작은 부분이라도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부산 시민에게 엘시티 의혹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제기되는 모든 의혹은 꼼꼼하게 빠짐없이 살펴봐야 할 그런 정도의 안건이다.

시민단체는 부산경찰의 이번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핵심인 특혜 분양 의혹 리스트 대상자들의 계좌 추적 등 금융거래와 관련한 강제 수사가 빠졌고, 최초 분양자에 관한 확인과 대조·비교 작업도 없었다. 실제 수사 과정에서도 경찰은 계좌 추적 등 필요성을 인식하고 계좌 거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과의 의견 차이로 5개월의 수사 기간 중 단 한 번도 이를 진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혐의점이 없다는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게 된 근거와 과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한다. 결과를 생성해 낸 근거와 과정이 모호하면 할수록 그 결과의 정당성이 의심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의혹의 불씨가 꺼지지 않은 엘시티라면 더 그렇다.

의욕적으로 출발한 경찰의 수사가 이처럼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것은 그래서 아쉬움을 더한다. 마침표가 아니라 오히려 의문 부호만 더 붙여 놓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경찰의 이번 엘시티 의혹 수사가 마지막이 될지는 미지수다. 엘시티 의혹과 관련해 부실한 검찰 수사에 대한 고발장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이미 접수돼, 지난 6월부터 수사가 진행 중이다. 부산참여연대 등이 “봐주기, 부실 수사를 조사해 처벌해 달라”며 지난 3월 엘시티 수사 전·현직 검사들을 직권남용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아직 고발인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향후 수사에 따라 어떤 파장이 있을지는 가늠할 수 없다.

높은 장대처럼 솟아 해운대 해수욕장을 제압할 듯 내려다보고 있는 엘시티는 적어도 아직은 부산의 자랑이라기보다 여전히 알지 못하는 의혹의 대상이다. 의혹이 있다면 무엇이든 언제라도 명쾌하게 풀어야 한다. 꼭 누구를 범죄자로 혐의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게 엘시티의 운명이라면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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