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배구팀 최윤지 통역사 “연경 언니와 선수들의 열정,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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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팀 최윤지 통역사(가운데)가 스테파노 라바리니(오른쪽) 감독을 비롯한 코치, 선수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윤지 제공

“아직 경기 안 끝났어요. 우리가 할 수 없는 건 버리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해. 연경 언니한테 잘 붙여 줘.”

지난 8일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3~4위전이 열린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 2세트 작전 타임에서 한국 대표팀 최윤지(31) 통역사는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 말을 놓치지 않고 전달했다. 세르비아에 11 대 19로 끌려가던 순간이라 그의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선수들은 다시 공을 띄웠고, 김연경은 곧바로 득점에 성공해 분위기를 전환했다.

“감독님 말씀과 의중을 그대로 전달하려 했을 뿐입니다. 감독님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 직역을 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정확하게 옮기려고 노력했어요.”

지난 9일 귀국한 최 통역사는 <부산일보>와의 통화에서 통역에 특별한 점은 없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시간이 제한적인 작전 타임에는 말을 빨리 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다만 통역 도중에도 선수들에게 힘을 북돋우려 노력했다. 최 통역사는 현재 SNS에서 뜨거운 올림픽 인물 중 한 명이다.

“처음 대표팀 합류 제안을 받았을 때 너무 신나면서도 부담스러웠죠. 팀에 폐를 끼치지 않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다는 각오로 임했습니다.”

올해 3월 그는 공석이 된 한국 대표팀 통역사 자리를 제안받았다. KGC인삼공사, 흥국생명 등 프로 배구단에서 6년간 외국인 선수를 통역한 경험이 빛을 발했다. 최 통역사는 이탈리아 출신 라바리니 감독과 영어로 호흡을 맞췄다. 준비된 전략을 전달하는 작전 타임보다 훈련 당시 통역은 더욱 힘들었다. 그는 ‘뒤통수에도 눈이 몇 개 더 달린 것 같았다’는 감독의 요구를 모든 선수에게 전달하기 위해 집중해야만 했다.

“훈련부터 최선을 다한 대표팀은 결국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감독님과 선수들이 감사 인사를 전한 마지막 자리는 ‘눈물바다’였습니다.”

최 통역사는 ‘4강 신화’를 쓴 대표팀 감독, 코치진, 선수들은 지난 8일 밤 도쿄올림픽 마지막 식사 자리를 가졌다고 말했다. 라바리니 감독은 선수들 한 명 한 명에게 고마웠던 점을 얘기했고, 감정이 복받쳐 오른 선수들도 마음속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특히 라바리니 감독이 ‘세르비아전에서 어느 순간 동메달을 못 딸 것 같다고 생각했다’며 ‘여러분이 보여 준 모든 것들은 어떤 메달로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평안해졌다’고 고백하자 여기저기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고 했다.

“마지막 자리에서 감독님 재계약 얘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브라질과 4강전이 끝나고 해 주신 말씀도 아직 기억에 남네요.”

최 통역사는 도쿄올림픽을 끝으로 대표팀 계약이 끝난 라바리니 감독에게 선수들이 재계약 의사도 물었다고 했다. 라바리니 감독은 개인적인 사정도 있고, 가족들과 상의해야 한다며 당장 대답은 못한다고 했다. 최 통역사는 브라질전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감독의 말을 듣고 울컥했던 순간도 회상했다. 그는 당시 ‘사람들은 우리에게 금메달을 따오라고 했지만, 누구도 8강이나 4강에 올라갈 거라 믿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며 ‘4강에 올라온 팀들은 현실적으로 우리보다 강해도 여러분이 마지막으로 남은 기회에 모든 걸 보여 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꿈 같았던 대표팀 통역사는 제 경험을 바탕으로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운동이 좋아 체대에 진학했고, 교환학생으로 멕시코에 가 스페인어도 배웠습니다.”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최 통역사는 부산중앙여고와 한양대 체육학과를 졸업했다. 스페인어는 2011년 대구육상선수권대회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계기로 배우게 됐다. 당시 영어를 쓰는 사람은 많았지만, 스페인어를 쓰는 1명에게 많은 일이 몰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스페인어를 배운 덕인지 라바리니 감독이 말하는 이탈리아어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올림픽은 너무나 멋있는 사람들과 같은 순간을 공유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팀의 일원이 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최 통역사는 우선 현대건설 배구단 통역사로 복귀한 뒤 미래를 그려나갈 생각이다. 선수들과 함께 생활을 하다 보니 스포츠 심리학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대표팀에서 ‘1년 차 통역사’가 된 마음으로 일했다는 그는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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