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질’ 필감성 감독 “황정민의 영화, 시나리오도 그에 맞춰 썼지요”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장면 하나. 배우 황정민이 새벽 귀갓길에 한 일당과 작은 시비가 붙는다. 음침한 분위기 가득한 이들 무리를 간신히 떼어내고 돌아가는데 기분이 어딘가 찝찝하다. 그 순간, 트럭 한 대가 황정민의 옆에 멈춰서고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른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인질’은 배우 황정민이 납치를 당하면서 시작한다. 평소처럼 일정을 소화하고 귀가하던 그가 인질이 된 뒤 극한상황에 처하는 이야기인데, 매 장면에서 매우 밀도 높은 연기를 보여준다. 극 초반부터 황정민은 표정과 눈빛만으로 분위기를 휘어잡고 단숨에 관객을 스크린 안으로 끌어들인다. 긴장을 늦추지 못한 채 그의 모습을 숨죽여 보고 있으면 러닝타임 98분이 순식간에 흘러간다.

“리얼리티 살리기 과감한 도전
장르영화·다큐 특성 버무려
중국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
황정민 준비성·열연에 감탄”

메가폰을 잡은 필감성 감독은 “처음부터 황정민을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썼다”고 말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부산일보>와 온라인 화상으로 만난 필 감독은 “실제 배우를 주인공으로 설정하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과감하게 도전했다”고 밝혔다.

이 영화는 2004년 중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배우 오약보 납치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이 사건을 바탕으로 2016년 만들어진 중국 영화 ‘세이빙 미스터 우’와 소재는 비슷하지만, 이야기 흐름이나 영화의 결은 다르다. 필 감독은 “실제 사건에 모티브를 얻어 만들었을 뿐 ‘세이빙 미스터 우’가 원작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작품은 ‘배우 탈출기’를 중심으로 해서 좀더 사실감 있게 보이길 바랐다”며 “장르영화와 다큐멘터리의 특성을 버무려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오프닝 장면에 황정민의 ‘밥상 소감’을 넣은 건 필 감독의 선택이었다. 감독은 “단도직입적으로 ‘황정민의 영화’라는 걸 보여주고 시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황정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뭘까 고민했는데 ‘밥상 소감’이 생각났다”면서 “작품 중간에 ‘브라더’나 ‘드루와 드루와’ 등 대중이 알만한 이야기도 많이 넣어서 작품의 분위기를 적절하게 균형 맞추려고 했다”고 말했다.

필 감독은 이번 작품 촬영을 하면서 황정민의 열연에 여러 번 감탄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숨소리 하나, 손짓 하나까지 다 준비해오는 배우”라며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뜨겁고 열정적인 태도에 놀랐다”고 했다. 이어 “촬영을 할 때 황정민 배우의 연기를 넋을 놓고 본 적도 많다”고 귀띔했다.

극 중 황정민이 에코백을 가지고 다니거나 매니저를 먼저 퇴근시키고 홀로 귀가하는 모습은 배우의 실제 습관이란다. 필 감독은 “배우가 많은 아이디어를 내줘서 고마웠다”며 “특히 영화 초반에 인질범과 대치 신을 더 실감나게 바꿔주더라”고 말했다. “황정민 씨가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무례한 인질범에게 응수하는 장면이 있어요. 처음에 썼던 시나리오에는 ‘알겠습니다’라 말하고 그냥 돌아간다고 쓰여 있었죠. 그런데 이 부분을 황정민 배우가 보곤 ‘나는 욕을 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영화에 그 장면을 넣게 됐죠(웃음)”

이번 작품으로 필 감독은 상업 영화에 데뷔한다. 단편 데뷔로만 따지면 데뷔 20년 차 연출자이지만, 앞서 준비했던 영화들이 아쉽게 빛을 보지 못하면서 마지막 작품 이후 10년 만에 입봉작을 내놓게 됐다. 필 감독은 “계속 엎어지고 또 엎어지던 때가 있었다”며 “그때 이야기를 다 풀면 ‘인간극장’ 10부작 정도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힘들어 포기를 생각한 적도 있었다”며 “이번 작품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고 털어놨다. “기자간담회 때 그동안 너무 울어서 눈물도 안 나온다고 말했었죠. 이번 영화를 보면서 너무 행복했어요. 황정민 배우가 ‘재미있네, 수고했다’고 하는 데 기분도 너무 좋았고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