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대표

안경을 맞추러 갔다가 걱정거리가 생겼다. 안경사의 충고에 따라 안과 의사와 면담했는데, 큰 병은 아니라고 해 그나마 안심이다. 의사 권유로 간단한 레이저 치료를 했는데, 이후 한참 동안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했다. 세상이 흐릿하니 이것처럼 답답한 일이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눈만큼은 정상으로 되돌려놓겠다고 다짐한다.

숨김과 드러냄 절묘하게 버무려지는
패션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어

나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어
당당하게 드러내고 때론 숨기면 될 일
문제는 자신감이 아닌가


밖으로 나오니 태양은 제철을 맞아 작열하고, 땅은 그 모든 빛을 반사하려는 듯 태양에 가세한다. 간간이 보이는 그늘만이 이들의 합세에 소극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얼른 그늘을 찾았다. 그리고 레이저 맞은 눈이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린다. 침침한 눈과 태양 사이에서 나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잠시 떠 올린다. 해변의 땡볕과 잠깐의 현기증, 그리고 청년 ‘뫼르소’의 불가항력을.

아내 의견 또한 의사 처방에 가세한다. 서랍을 열어 잘 쓰지 않던 색안경을 준비하고, 챙이 깊은 모자도 찾아낸다. 시급히 눈이 보호되어야 할 지경이니 얼른 실천에 옮기라는 아내의 채근. 꺼내 놓고 보니 하필이면 모두가 검은색 물건들이다. 세상을 더 환하게 하려는데, 검은색 물건들이 대거 동원되다니 아이러니다.

검은색 벙거지를 눌러쓰고 검은 렌즈의 안경을 걸치니, 얼굴 피부 절반이 사라졌다. 외출하려면 마스크까지 써야 할 테고, 그러면 내 얼굴은 얼마나 남게 될까? 조그만 몸뚱이 위에 커다란 검은 점 하나가 박힌 우스운 물체가 걸어 다니는 상상을 하며 자꾸 거울을 본다. 이런 정도의 패션에도 어색해하다니, 나는 어쩔 수 없는 구시대인 일까?

현관의 전신거울 앞에 서니, 마치 히잡을 쓴 아랍 여인 같다. 온통 검은색에 둘러싸인 채, 불과 20% 남짓 황색 얼굴로 조금 전에 전화가 온 친구를 만나려는 것이다. 얼굴보다 더 우스운 것은 옷차림일지도 모른다. 더위에서 조금이라도 더 벗어나려 있는 대로 간편하게 하고 있었으니, 중무장한 얼굴과 너무 대조적이다. 민소매에 반바지, 희멀건 피부색은 물론이고, 거뭇하게 정리되지 않은 털 따위의 무방비한 노출. “그래! 이놈의 더위가 문제야.” 얕은 믿음을 앞세워 민망함을 감춘다.

아무튼, 그런 몰골과 복장으로 지하철에 오른다. 그리고 조심스레 주위 사람들을 살핀다. 지하철 안은 서늘해 여름을 잊게 하건만, 조금 전까지 밖의 땡볕과 지열에 시달린 사람들의 복장과 나의 차림을 비교하려던 것이다. 나쁜 생각이 아니니 나의 관찰이 부디 용서되길 바라며, 검은 안경 속의 내 눈이 바빴다. 그리고 안도했다. 아니나 다를까? 남녀노소 모두가 약속한 듯 나와 비슷한 모습이 아닌가.

아~ 어제까지의 나 같은 사람이 오히려 패션 폭력자였구나. 코로나 여파든 햇볕 때문이든 얼굴은 가리고, 나머지 몸은 있는 대로 노출하는 것이 이 시절의 패션임을 알겠다. 신체의 노출이 부끄러웠던 시절이 언제 있었냐는 듯 노출은 자랑이 되고, 그러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몸매를 열심히 가꾸며, 마침내 훔쳐보는 남의 눈까지 즐기며 거리를 활보한다.

한편, 늘 자신 없던 얼굴이 가려짐으로 오히려 당당해졌다. 마침내 미추에 차별이 없는 세상을 구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니 질병과 날씨 탓에 생긴 이 어쩔 수 없는 가림이 그리 싫지 않은 표정들이다. 감춘 너머의 표정을 짐작한다.

그래! 숨김과 드러냄이 절묘하게 버무려지는 패션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라고 해 예외일 수 있겠나? 격식으로 몸을 칭칭 두르고, 거울에 비친 몰골에 실망할 일은 아무래도 아닌가 보다. 당당하게 드러내고 때론 숨기면 될 일. 문제는 자신감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