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을 만드는 것과 요리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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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꽃이 피면 바지락을 먹고 / 신경균

전통 방식으로 그릇을 굽는 도예가 신경균(왼쪽)이 계절과 절기에 맞는 음식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오른쪽은 참게 살을 일일이 발라 빚은 참게완자탕. 브.레드 제공

부산 기장에서 장안요(長安窯)를 짓고, 전통 방식으로 그릇을 굽는 도예가 신경균. 그는 고려 다완을 재현한 신정희(1930~2007) 선생의 아들이다. 15살 때부터 그는 도예의 길을 걸었다. 2005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공식 회의장에 한국 도자를 대표하는 작가로 초대됐고,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때는 독일 대통령에게 그의 달항아리가 선물로 전달됐다.

부산 기장서 그릇 굽는 도예가 신경균
계절과 절기에 맞는 음식 이야기 펴내
전국 각지 스님들이 만든 절밥 소개
대를 이은 전통 가족밥상 얘기도 실어

이런 그가 계절 음식을 얘기하는 책 <참꽃이 피면 바지락을 먹고>를 펴냈다. 그릇 굽는 이가 음식 이야기를 해서 좀 생뚱맞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릇 만드는 사람이다 보니 사람들은 좋은 그릇이 무엇인지를 종종 묻는다. 이 질문은 좋은 음식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릇을 굽는 내가 음식 이야기를 하는 이유다. 좋은 그릇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음식 이야기를 하면 이해하기가 수월하다. 그래서 거창하지 않게 그릇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생각에 음식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음식 만드는 것과 그릇 만드는 게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음식 얘기를 하다가 그릇 얘기를 하고, 그릇 얘기를 하는가 싶으면 다시 음식 얘기를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눠서 말이다. 그 절기에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이 최고로 맛있다 했던가.

저자는 갖가지 산나물과 근해에서 잡은 싱싱한 생선, 해산물이 있는 시장을 좋아한다. 아니, 시장 가는 것을 즐긴다. “시장에서 식자재를 고르는 과정은 먹는 것만큼 즐겁다. 도자기 빚을 흙을 발견할 때처럼”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음식을 얘기할 때는 요리사 같다. ‘머위는 5백 원 동전만 할 때가 제일 맛있다. 나물의 보드라운 순은 살살 무쳐 먹고, 조금 자라면 데쳐 먹고, 억세지면 튀김을 한다. 참꽃이 필 때 바지락을 먹고, 벚꽃이 흩날리면 햇녹차를 마시고….’ 저자는 스스로 ‘나물 덕후’라고 말한다. 그만큼 나물에 대해 잘 안다. ‘두릅은 튀겨 먹고, 가죽은 고추장에 찍어 먹고, 오가피는 살짝 데쳐 무친다. 죽순은 삶아서 초장에 찍어 먹거나 볶음을 한다.’

저자의 음식 솜씨는 법정 스님도 감탄할 정도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어느 해 봄, 마침 봄기운을 가득 머금은 나물이 있던 때 법정 스님께서 다니러 오셨다. 집안 누구도 스님 대접할 나물 반찬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해 “뭐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지” 하며 직접 나섰다. 나물 맛을 본 스님은 “이 집 나물 참 맛있다! 누가 했어”라고 물었다. 나물 덕분에 법정 스님과 인연을 맺었다.’

경남 양산 통도사 아래 사하촌에서 자란 저자는 절밥에도 익숙하다. 저자의 아내 임계화 씨도 스님들과 인연이 깊다. 통도사 극락암의 감 넣은 김장김치, 윤필암 은우 스님에게 배운 깻잎조림, 고흥 금탑사 서림 스님의 비자강정, 밀양 표충사 한계암 스님들이 감기 걸렸을 때 드시던 능이죽 등 재료 본연의 맛을 알게 하는 단순한 음식들을 만드는 한편, 가마터를 옮겨 다니며 오지에서 먹었던 음식이며, 참나무 깔고 가마솥에 불을 때서 만든 장안 덕, 참게 살을 일일이 발라 빚은 참게완자탕 등 제철 재료로 정성을 담은 특식 이야기도 실었다.

저자는 아버지가 드시던 생선, 어머니의 장아찌를 회상하며 대를 이어 전해지는 가족 밥상도 얘기한다. 여름이면 들이키던 청각냉국 한 사발, 겨울이면 처마 밑에 매달아 놓고 한 점씩 베어 먹던 가덕 대구.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고추장에 박은 가죽장아찌, 전어 내장으로 담근 밤젓, 아이들이 ‘할아버지 생선’이라고 부르는 눈볼대, 꼴뚜기 비슷한 호래기. 저자의 식구들도 그것들에 입맛을 다신다. 누구라도 할머니, 어머니의 음식에 그러듯이, 함께 먹던 음식은 정(情)이 깃든 세월, 아련하고 소중한 추억이다.

저자를 늘 곁에서 지켜봐 왔던 부인 임계화 씨는 “늘 불을 다루니 기본적으로 음식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고 관심도 많다”고 귀띔했다.

맛있는 것일수록 혼자 먹으면 재미가 없다는 것을 아는 저자. 그는 오늘도 제철 음식 앞에서 “누구랑 같이 먹을까” 고민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누군가에 전화를 걸어 “오늘 시간 어때요”라고 묻고 있을지도….

장안요 앞마당에선 죽순을 기르고, 여름 빗소리 들으려고 파초를 심고, 가을 햇살 아래 능이버섯을 다듬으며 사는 부부의 잔잔한 일상을 엿보는 것은 덤이다. 더불어 도예가의 일상까지도. 다양한 사진이 곁들여져 보는 재미에다, 책장도 술술 넘어가 지루하지도 않다. 신경균 지음/브.레드/360쪽/2만 2000원.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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