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할머니는 어떤 존재로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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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우리 할머니를 만났어! / 정혜경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싶었는데, 우주는 엄마한테 끌려 병원에 왔다. 할머니가 입원해 있는 곳이다. 병실에 들어가니 할머니가 표정 없는 모습으로 앉아 계시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도 할머니는 대답이 없다. ‘내가 온 줄도 모르시는 것 같은데….’

지금은 노쇠한 우리들의 조부모
열심히 인생 살아왔음을 알려줘

엄마는 간호사실에 갔다 오고, 할머니가 필요한 것을 챙기느라 바쁘다. 혼자 멍하니 할머니 옆에 있으려니 너무 심심하다. ‘내가 있었으면 두 골은 넣었을 텐데.” 우주의 머릿속에는 온통 축구 생각뿐이다. 그때 우연히 병실에 놓인 안경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 안경이지? 궁금한 마음에 우주는 안경을 한번 써 봤다.

“우주, 안녕!” 안경 너머로 반갑게 인사하는 할머니가 보인다. 아니 잠깐, 안경을 벗으니 할머니는 표정 없이 앉아 있다. 이상하다. 안경을 다시 써 볼까? 할머니가 우주 앞으로 불쑥 다가온다. “우리 나갈까?” 얼떨결에 할머니를 따라나섰는데 우주가 알던 할머니가 아니다. 병원 복도에서 축구공을 멋지게 드리블하고, 다른 병실에 쑥 들어가 우주가 못 찾게 숨바꼭질도 잘하고, 편의점에서는 우주와 함께 라면, 과자, 아이스크림을 맛나게 드셨다.

건강했던 할머니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기억하는 아이들에게도 힘없이 병원에 누운 할머니의 모습은 낯설다. 심지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아프셨다면 어떨까? 아이들에게 할머니는 어떤 존재로 기억될까? <진짜 우리 할머니를 만났어!>의 저자 정혜경 작가는 어린 딸이 기억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프고 힘든 것들뿐이라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지금은 노쇠한 너희들의 조부모가 정말 즐겁게, 또 열심히 인생을 살아왔던 사람임을 알려주고 싶어 했다. 할머니도 맛있는 과자를 좋아했고, 축구 한판쯤은 거뜬히 해내고, 너를 하루 종일 웃게 만들 수 있는 정말 재미나고 멋진 분이었다고 말이다.

이상한 안경 덕분에 우주는 할머니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됐다. 우주와 한 팀이 되어 축구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멋진 할머니. 친구랑 다투고 엄마한테 야단맞은 이야기에 무조건 우주 편을 들어주는 든든한 할머니. 얼굴에 묻은 얼룩을 깨끗이 닦아주는 다정한 할머니. 이제 우주는 안다. 표정 없이 앉아 계신 할머니의 마음속에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는 것을 말이다.

“할머니, 우리 다음에 또 놀아요.” 병원을 나서는 우주 뒤로 분홍 안경을 쓴 청소부가 지나간다. 그가 들린 병실마다 분홍 안경이 놓인다. 이제 병원 복도는 분홍 안경을 쓰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즐겁게 노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코로나로 병문안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지금,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이 독자의 시선을 더 오래 붙들어 둔다. 정혜경 지음/한울림어린이/48쪽/1만 4000원.

오금아 기자 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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