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만들면 뭐해' '쓸데없다' 비판받는 기초의회 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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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나 광역지자체가 전 국민의 실생활까지 일일이 살피기에는 인력 문제, 지역 특수성 등 여러 면에서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입법 장치가 기초의회에서 제정하는 각종 조례다. 기초지자체는 이를 근거로 주민 생활을 지역 상황에 맞게 꼼꼼하게 챙김으로써 국민 편의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기초의회를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하는 이유다. 그런데 부산 지역 기초의회들이 만든 수많은 조례가 다른 지역의 조례를 마구 베낀 데 이어 쓸모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례 절반은 개선 또는 폐지가 필요하다고 하니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양질의 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부산 조례 절반 개정·폐지 필요성 지적
실질적 주민 편의 위해 제도 개선해야

기초의회 의원들의 자질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일부 기초의원들의 추태나 망동, 비리 등 문제가 불거져 지방의회 무용론을 부추긴다. 조례 제·개정이나 구·군정 질의, 5분 자유발언 같은 의정활동에 등한해 실력마저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인지 부산 16개 구·군 조례 가운데 다른 지역 조례를 관행적으로 베끼거나 모방한 게 수두룩하다. 기초의원들이 이미지 관리와 정당 공천 심사를 위해 조례 발의 실적에 연연한 탓이다. 이래선 지역 특색과 주민들 사정을 잘 반영한 맞춤형 행정 서비스가 이뤄질 수 없다.

실제로 최근 북·사상·금정·수영·영도구 등 5개 기초지자체의 자체 입법 평가 결과, 평가 대상 조례 226개 중 97개가 개정 권고를 받았으며 16개는 없애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절반이나 되는 113개 조례가 무용지물이라니 충격적이다. 사업 추진이나 예산 반영 없이 장기간 방치, 조례로 정한 의무 미이행, 실효성은 없고 선언에 그침 등 개정과 폐지가 요구되는 이유도 다양하다. “조례를 만들면 뭐해”라거나 “쓸데가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부산의 구·군 절반 이상은 조례를 만든 뒤 해당 조례가 제대로 기능을 하는지 점검·평가하는 시스템이 없어 문제다. 불필요한 조례 양산은 물론 예산 낭비를 부르는 선심·홍보성 조례 제정을 막기 위해 입법 평가제 확대가 절실하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지방자치의 발전은 기초의회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초의회가 계속 불신을 산다면, 지방자치제가 흔들려 지방분권의 안착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기초의원 모두 대오각성해 주민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실효적인 조례 제정에 힘써야 할 때다. 기초의회 스스로도 양질의 입법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잘못된 조례 제정 관행을 근절하고 의원들의 역량을 제고하는 데 노력해야 마땅하다. 1999년 지역민이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조례 제정과 개정·폐지를 청구할 수 있게 도입한 ‘주민 조례청구제’를 활성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테다. 제도 개선을 위한 확실한 실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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