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속에 갇힌 부산 ‘아픈 역사’ 재조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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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를 전후로 전쟁에 대비해 만든 각종 굴(窟)이 부산에서 속속 발굴되고 있다. 대부분 동굴이 역사적 가치에도 장기간 방치되고 있어, 광범위한 학술 조사와 보존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제강점기 포진지 등 곳곳 산재
강제동원·학살 등 ‘수난의 흔적’
광범위한 학술 조사·보존 목소리

취재진이 부경근대사료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지금까지 확인한 일제강점기 부산 동굴은 모두 15곳이다. 도시 개발과 지반 붕괴 등으로 사라지거나 발견되지 않은 동굴까지 합하면 30곳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동굴의 용도는 크게 해안 포진지 관련시설인 벙커, 전시 일본인 대피를 위한 방공호, 자원 약탈용 광산으로 나뉜다.

부산 동굴은 대부분 1940년대 초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 벌어진 아시아태평양전쟁 때 뚫렸으나, 일부는 1900년대 초 러일전쟁을 대비해 구축됐다. 일본과 가까운 부산의 지리적 특성에 따라, 도심 지하와 해안 곳곳을 뚫어 전쟁기지로 삼은 것이다.

동굴 진지 구축에 한국인들이 강제 동원됐고 일부는 공사 후 학살됐다는 증언과 기록도 계속 나오고 있어 추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기관총 진지’로 구축된 가덕도 새바지 동굴은 일본군의 관리·감독하에 강원도 탄광근로자들이 뚫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륙도 지하벙커를 포함한 장자등 포진지에는 600명의 한국인이 동원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일제강점기 부산 동굴은 지금도 계속 발견되고 있다. 올 1월 취재진이 최초 보도한 태종대 지하벙커를 비롯해 수영구 망미동 구리광산 등이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비록 ‘아픈 역사’지만 부산만의 근현대사가 담겨 있는 만큼 이를 보존, 기록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최근까지 지역 동굴에 대한 전방위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어, 대부분 동굴이 입구가 막힌 채 방치되거나, 창고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일부 동굴은 군사구역에 있거나, 붕괴 위험이 높아 조사의 한계도 있다. 이에 따라 먼저 각 구·군과 육군 53사단 등 지역 전체가 조사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은 “일제강점기 수난의 부산 역사를 아주 잘 보여 주는 흔적 중 하나가 동굴들”이라면서 “무관심 속에 사라지고 나면 어떻게 이 같은 역사를 증명하고 기억할 수 있겠는가”라고 밝혔다. 이승훈·남형욱 기자 lee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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