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돋보기] 슬기로운 신탁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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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 신영증권 APEX 패밀리오피스 과장

드라마 속 주인공 부모의 장례식 장면 후에는 보통 슬픔을 극복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 사이에 당연히 존재하는 ‘상속처리와 집행’ 과정은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유교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 부모님의 자산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도리가 아니라는 암묵적인 사회적 규율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 상황에선 부모님의 자산이라는 ‘실체’와 자녀로서의 도리 혹은 효(孝)라는 ‘관념’의 간극을 좁혀야 하는 때를 마주하게 된다. 부모님의 부존재 이후 맞이하게 되는 슬픔과 동시에 찾아오는 ‘상속’이라는 절차는 어색함마저 들게 한다. 이는 형제자매 간에도 언급하기 애매한 부분이며, 각자의 배우자가 있을 경우 더욱 불편한 과정이 된다. 이때문에 한편으로는 부모 자신의 생전 의사를 자녀에게 전달하는 것은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마지막 의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 연구소의 설문조사에서는 ‘사망 전 유언장을 작성하겠다’는 비율이 54%인데 비해 실제 작성한 비율은 3~5%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만큼 유언장의 작성이 본인 스스로 죽음을 인정해야 하는 불편함이 느껴지는 행위이기 때문일 테다.

조금 더 자연스럽고 편한 방법은 없을까? 장례식 이후 상속인들이 부모님이 거래했던 금융회사에 가서 부모님의 생전의사를 확인하고 집행을 확인하는 것으로 부동산, 금융자산 등의 이전 및 세금납부까지 모든 상속절차가 마무리된다면 어떨까? 이러한 과정을 유언대용신탁이라고 한다.

유언대용신탁은 또한 유족의 자산승계를 계획적으로 나눠 설계하는 역할도 한다. 예를 들어 신탁체결 후 생전에는 본인의 생활비로 사용하다가 사후에는 자녀가 주택을 취득했을 때 주택 가격의 100% 지급, 손주가 태어났을 때 남은 자산의 50% 지급, 회사를 이어받고 10년이 된 날 나머지를 지급하는 식의 인센티브 설계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진정한 유산은 ‘돈’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자산과 함께 본인의 철학을 조금이나마 전달하고 혹시 모를 분쟁이나 불편함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수동적 상속만으로 불완전하다. 상속 ‘설계’라는 적극적 상속을 통해 가치전달을 실행하는 것만이 나만의 가치상속(헤리티지)이 되는 것이다. 당장 죽음을 눈앞에 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일상의 어느날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날의 우선순위를 재정비하기 위해 자녀들에게 남길 자산의 승계를 계획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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