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엑스포 스토리 ⑦] 에디슨과 테슬라 ‘전류 전쟁’ 시대 앞선 천재들의 각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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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전기로 환하게 불을 밝힌 시카고엑스포 전시장 전경. 국제박람회기구(BIE) 홈페이지 캡처

“박람회에 조명 달 정도로 인력이 남아 나질 않아.” “그저 박람회 정도가 아니에요. 전 국민의 3분의 1이 빛의 도시 시카고로 온다고요. 3000만 명이 우리 전기를 볼 겁니다. 모든 창문과 가로등이 우리가 이겼다는 광고판이 될 거예요.”

2019년 국내에 개봉한 영화 ‘커런트 워(The Current War)’의 한 장면이다. 1800년대 후반, 토머스 에디슨과 그의 참모 사무엘 인설이 나눈 대화다. 당시 미국에서는 사업가이자 발명가인 조지 웨스팅하우스와 천재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 그리고 이미 드높은 명성의 에디슨이 전류 전쟁에 한창이었다. 미국 도시들은 에디슨의 ‘직류’와 웨스팅하우스와 테슬라의 ‘교류’ 설비,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이고 ‘가성비’가 높은지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그 와중에 마침 빛의 도시 시카고가 1893년 월드엑스포 개최지로 결정된 것이다. 1893년 시카고 엑스포의 전기사업권 입찰은 에디슨과 테슬라의 전류 전쟁 승자가 누구인지 가리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미국 과학계 숙명의 라이벌
시카고엑스포 사업권 놓고 경쟁
테슬라 교류시스템 ‘최종 승자’
25만 개 전구가 전시장 밝혀

엑스포와 에디슨의 인연은 18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1세였던 에디슨은 1878년 파리엑스포에 전구와 확성기, 기초적인 형태의 축음기를 출품해 시선을 끌었다. 축음기는 1876년 필라델피아 엑스포에 선보였던 벨의 전화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었다.

한편 또 다른 천재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는 1893년 시카고엑스포에 ‘콜럼버스의 달걀’을 출품해 주목받았다. 당시 시카고엑스포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그는 달걀을 깨서 세운 콜럼버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전자기장으로 스스로 회전하다가 우뚝 서는 구리 달걀을 고안했다.

테슬라가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천재형 발명가에 가깝다면, 에디슨은 발명품을 상업화하는 비즈니스에도 매우 탁월했다. 전류 전쟁 과정에서도 에디슨은 동물 감전 실험 등으로 교류가 위험하다는 인식을 퍼뜨리고, 로비를 통해 유리한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애썼다. 교류 방식의 전기 사형도구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가 들통이 나기도 했다.

최종 승자는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이었다. 시카고엑스포 심사위원회가 저렴하고 효율적인 교류 전력 시스템의 장점을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웨스팅하우스의 교류 전력 시설로 밝혀진 25만 개의 전구가 엑스포 부지와 전시장을 낮처럼 환하게 만들었다. 사상 최대 규모의 나이아가라폭포 발전소 사업권도 웨스팅하우스가 잇따라 거머쥐었다. 100년이 넘은 2003년, 마틴 에버하드와 마크 타페닝은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를 기리는 마음으로 창업한 전기차 제조사 이름을 ‘테슬라’로 지었다. 박세익 기자 run@

공동 기획: (사)2030부산월드엑스포 범시민유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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