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성추행 사망 ‘정신 못 차렸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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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대전 유성구 국군대전병원에서 장병이 출입 절차를 밟기 위해 차량을 세우고 있다. 이 병원에는 남성 상사에게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를 한 뒤 지난 12일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해군 여중사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공군 여중사 성추행 사망 사건에 이어 해군에서도 여성 부사관이 성추행 피해를 신고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여중사가 성추행을 당한 시점은 공군 여중사가 사망한 지 엿새 뒤였다. 해당 부대의 피해 신고 묵인과 2차 가해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공군 사건과 판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군은 공군 여중사 사망을 계기로 성범죄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반복되는 비극에 군 당국의 안일한 대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끓는다. 해군은 지난 14일 오전 경기도 평택 해군 함대사령부 군사법원에서 인천의 한 부대 소속인 A 상사에 대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진행한 뒤, 군인 등 강제추행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고 밝혔다. A 상사는 성추행이 발생한 지 79일, 군이 수사에 착수한 지 5일 만에 2함대 미결수용실에 수감됐다.

해군 중사, 성추행 신고 뒤 사망
은폐·2차 가해 ‘공군사건 판박이’
해당 부대 따돌림·업무배제 정황
군 재발 방지 약속 ‘하나 마나’


A 상사는 지난 5월 27일 민간 식당에서 같은 부대 여성 후임인 B 중사에게 ‘손금을 봐주겠다’고 말하며 신체 접촉 등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B 중사는 사건 직후 상관인 주임상사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주임상사는 ‘B 중사가 성추행 피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B 중사는 약 2개월 뒤인 이달 7일 부대장과의 면담을 자청해 피해 사실을 알렸고, 이틀 뒤인 9일 군사경찰에 해당 사건이 정식으로 접수됐다. 수사에 착수한 해군 군사경찰은 지난 11일 A 상사를 군인 등 강제추행 혐의로 입건했다.

하지만 지난 12일 오후 B 중사는 자신의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해군은 “B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지난 3월 성추행 피해를 본 뒤 지속해서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방치되다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중사 성추행 사망 사건과 판박이다. 특히 B 중사가 성추행을 당한 날은 공군 여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지 6일 뒤로, 공군참모총장이 사퇴하고 전군 성폭력 특별 신고 기간(6월 3~30일) 중이었다.

가해자·피해자 분리 등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B 중사를 업무에서 배제하는 등 2차 가해 정황도 속속 나오고 있다. 국방부와 해군은 ‘B 중사가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에 따르면 성범죄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즉시 상관이나 수사기관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B 중사가 유족과 나눈 문자메시지를 공개하며 “B 중사는 성추행 사건 이후에도 A 상사와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며 업무상 따돌림, 업무 배제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말했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해군 중앙수사대는 이번 사건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 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군 관계자는 “국방부 조사본부와 해군 중앙수사대는 피의자를 구속한 상태에서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해군에 따르면 보통전공사상심사(사망)위원회를 열어 B 중사를 순직 처리했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국군대전병원에서 비공개로 장례식이 치러진 B 중사는 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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