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가축 등 수탈 가용자원은 물론 도로 경사도까지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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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식민지 야욕’ 일본군 지도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사전 작업이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졌는지를 엿볼 수 있는 23장의 실측 지도는 1900~1901년 일본의 군사보고용으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주차부대 소속 세키네 작성
두 첩 모두 상부 보고용 자료 추정
일본인 거주지·주요시설 부호로
낙동강 수심·도선 때 가능 인원
부산항·남쪽 지형까지 상세 표시


■작성자는 일본군 세키네 쇼헤이

와 , 두 첩(牒)을 작성한 이는 한국부산주차대(韓國釜山駐箚隊, 한국부산주둔부대) 소속 육군 보병(이등병) 세키네 쇼헤이(關根正平)로 1901년 4~10월에 5만분의 1로 축소해 제작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국립해양박물관 백승옥 학예연구실장은 “두 첩 모두 상부 보고용 자료로 추정된다. 또 별도 지도 5장 중 3장도 세키네가 1900~1901년에 작성했으며, 작성자의 이름이 없는 2장도 기법상 동일 인물이 작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작성자인 세키네가 소속한 한국부산주차대는 한국주차대의 하부 군대조직으로 1개 중대 병력이 주둔해 있었다. 한국주차대는 당초 일본공사관 수비대(1883)로 시작해 한국주차대(1896), 한국주차군(1904), 조선군주차대(1910), 조선군(1918), 제17방면군(1945) 등으로 변모한 군사조직으로, 의병 탄압과 독립운동 억압에 앞장섰으며 특히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일본의 조선 민중에 대한 군사적 지배의 핵심조직이었다. 지도를 제작할 당시, 한국부산주차대는 지금의 부산근대역사관 자리에 있었다.



■두 첩 지도에 인구, 가축 수 등 담아

두 첩 중 에는 11장의 지도 외에 한국부산주차대 평면도 한 장도 들어 있다. 이 중 부산지역이 비교적 상세하게 나타난 지도는 제1 지도와 제11 지도다. 제1 지도는 기장에서 동래, 제11 지도는 양산에서 동래부까지를 담고 있다. 이 중 제11 지도는 지도 왼쪽으로 금정산성과 범어사가 표기돼 있고 마을의 가구 수, 인구, 가축(소)의 수, 도로 폭, 도로 경사도 등이 상세하게 표시돼 있다. 지도 가운데는 붉은 줄이 그어져 있고, 그 옆에 붉은 글씨로 한국경부전신선이라 표시돼 있다. 양산에 대해서는 인구(120호), 생계, 우물, 말(馬) 등 축생 정보가 실려있다. 또 다른 한 첩인 에는 7장의 지도가 들어 있다. 이 중 가로 29cm, 세로 80cm에 달하는 제7 지도는 (양산) 물금에서 낙동강을 따라 부산(사상)까지의 지형이 그려져 있는데, 지도 오른쪽으로는 금정산성(북문) 일부도 표시돼 있다. 또 낙동강 도선 시 가능 인원과 물자, 수심 등이 기록돼 있다.

이외 대부분의 지도에는 마을 인구나 가축 수는 물론이고 길의 경사도를 비롯해 도로 폭, 도로 경사도까지 매우 자세하게 표시돼 있다.

국립해양박물관 김태만 관장은 “조선 식민지화 및 러일전쟁(1904~1905) 등에 대비해 만든 지도로 추정되는데, 눈으로 지형을 보고 그린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소나 말이 어디에 몇 마리 있고, (일본)군대 주둔 시 어떤 것을 수탈할 수 있는지 등의 가용자원까지 전부 분석해 표시해 놓을 정도로 용의주도한 일본군의 모습이 지도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조선 식민지화’ 실체 드러나

별도 지도 5장은 얇은 미농지 위에 정밀하게 그려져 있다. 이 중 제작자 표시가 없는 ‘조선부산일본거류지’와 ‘부산일본거류지’는 당시 일본인 거주지를 그려 놓고 있어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부산일본거류지’에는 바둑판 모양의 거류지 도로 40여 곳에 붉은 점으로 수도(水道)가 선명하게 표시돼 있으며, ‘조선부산일본거류지’ 지도에는 세관, 병원, 은행, 학교, 보급창, 신사, 창고, 등대, 주차대 등 36개의 기관과 주요 시설물이 부호로 표시돼 있다.

제작자가 세키네 쇼헤이로 되어 있는 ‘한국부산항지도’는 매축(1902)되기 전의 부산항 모습을 담았으며 지도 오른쪽 아래엔 절영도 일부가 그려져 있다. ‘부산항지도’는 부산항과 함께 한반도 남쪽 지형(가덕도, 거제, 고성, 진주, 사천 등)이 지명과 함께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23장의 지도 중 ‘조선부산일본거류지’를 학술지인 에 처음 소개했던 국립해양박물관 김희경 교육문화팀장은 “20세기 초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일본의 숨겨진 야욕을 이들 지도를 통해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립해양박물관 측은 ‘노상측도’ 두 첩과 단독 지도를 별도로 공개할 예정이다.

글·사진=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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