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혐오시설 인허가, ‘법보다 표’가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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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지자체가 지역 내 유해·혐오 시설 유입을 반대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해당 시설의 설치 추진이 알려질 때마다 민원이 빗발치자 이를 반영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선출직인 지자체장이 내년 지방선거나 차기 총선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소각량 늘리기 위한 ‘결정안’ 제출
사하구, 주민수용성 등 고려 반려
기장군수, 의료폐기물 반대 시위
지자체장 선거의식 행보 비판도

부산 사하구청은 “이달 초 사하구 구평동에서 폐기물처리업을 하는 A업체가 소각량을 늘리기 위해 신청한 도시계획 변경안을 반려했다”고 15일 밝혔다. 사하구청 도시정비과 관계자는 “기초지자체는 관련법에 따라 해당 부서의 의견, 주민 수용성, 적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면서 “A업체 변경안의 경우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구청에 따르면 지난 5월 26일 A업체는 일일 소각량을 48t에서 90t으로 늘이기 위해 구평동 한 일원에 대한 도시관리계획(폐기물처리시설) 결정안을 구청에 제출했다. 제출안에는 노후한 기존 소각시설을 폐기하고 보관 창고와 소각 시설을 신축하기 위해 폐기물처리시설 부지 면적을 늘이는 내용을 담았다. A업체가 신청한 지역은 ‘전용공업지역’으로 폐기물처리 시설 건축이 가능하다.

하지만 구청은 ‘이미 사하구는 각종 폐기물 시설로 포화 상태이며, 증설 시 주민 생활 환경이 악화될 것’이라고 반려했다. 사하구청은 A업체에 발송한 공문에서 ‘부산에 있는 민간 소각장 2곳 모두 사하구에 있으며, 두 곳의 하루 소각량은 348t으로 부산시 전체 소각 폐기물 발생량(139t)을 이미 훌쩍 넘는 탓에 증설은 어렵다’고 이유를 덧붙였다.

앞서 사하구의회도 지난 6월 “사하구는 약 23%가 공업지역으로 폐기물처리업, 폐수처리업 등 주요 환경오염 유발업종이 다수 밀집해 분진·악취·소음 등으로 주민 민원이 끊이질 않는다”며 반대 의견을 낸 바 있다. 지난 9일 부산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한 사하구의회 유동철 의원은 “부산시는 사하구 전용공업지역에 레미콘 공장을 비롯한 환경유해업종이 진입할 수 없도록 전용공업지역을 용도 변경해 동서격차 해소와 균형 발전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처럼 유해·혐오 시설을 지자체 차원에서 반대하는 움직임은 사하구청뿐만 아니다. 오규석 기장군수는 올 4월과 6월부터 각각 ‘NC메디 의료폐기물 소각량 확대 반대’와 ‘장안읍 산업폐기물 매립장 반대’ 시위를 직접 수십차례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민원이 빗발치는 사안에 대해 선출직인 지자체장이 지나치게 선거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후 행정소송이 제기돼도 판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니, 적어도 선거 이전에는 민원이 우려되는 시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초지자체가 시설 설치를 반려했지만 행정소송에서 패소한 경우도 있다. 사하구는 지난해 4월과 8월 두 차례 걸쳐 사하구 장림동에 레미콘 제조시설을 짓겠다는 B사의 건축신고를 반려했다. 이에 B사는 지난해 8월 사하구청을 상대로 소송했고, 올 2월 부산지방법원은 1심에서 “해당 부지는 제2종 일반주거지역에 있는 아파트와 약 700m 이상 떨어져 있는 전용공업지역”이라며 구청 패소 판정을 내렸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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