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전 일본군 지도에 드러난 ‘조선 식민지화 야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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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포~부산거류지지 5만분 1 노상측도>에 들어 있는 제7 지도. 물금에서 낙동강을 따라 부산까지의 지형이 그려져 있다. 국립해양박물관 제공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한일병탄(1910년) 이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했음을 보여 주는 군사보고용 실측 지도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지도에는 마을 인구, 가축 수는 물론이고 도로 폭, 도로 경사도, 군대 주둔 시 수탈할 수 있는 가용자원까지 상세하게 표시돼 있어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사전 작업이 주도면밀했음을 엿볼 수 있다. ▶관련 기사 6면

국립해양박물관은 2016년 한 개인으로부터 구입한 <동래~경주~동래지 5만분 1 노상측도>와 <마산포~부산거류지지 5만분 1 노상측도> 두 첩(牒·예전에 쓰던 공문서)과 ‘일본거류지’와 ‘부산항’ 등을 그린 별도 지도 5장을 광복절을 맞아 15일 전격 공개했다. 두 첩 속에는 18장의 노상측도(평면도 1장은 제외)가 들어 있어 지도만 놓고 보면 모두 23장에 달한다. 국립해양박물관은 구매 후 이들 지도 중 ‘조선부산일본거류지’를 중심으로 학술지인 <항도부산>(2018)에 간략하게 소개한 바 있으나, 완전 공개는 이번이 처음이다.

1900~1901년 제작 실측 지도
국립해양박물관, 시민에 첫 공개
부산 비롯 밀양·대구까지 포함
수탈 가용 자원 상세히 표시
식민지화 노린 주도면밀함 보여

국립해양박물관 측은 23장의 지도는 작성자를 알 수 없는 일부 지도를 제외하곤 모두 조선에 주둔했던 일본군 병사가 1900~1901년에 작성한 군사보고용 지도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들 지도는 120여 년 만에 부산시민들에게 처음으로 공개되는 셈이다.

두 첩은 모두 가로 17cm, 세로 23cm 크기의 공문서로 이 중 <동래~경주~동래지 5만분 1 노상측도>라는 제목의 첩은 서문 3장(6쪽)과 지도 11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산포~부산거류지지 5만분 1 노상측도>라는 제목의 또 다른 첩은 서문 4장(8쪽)과 지도 7장으로 되어 있다. 이 첩 속에 담긴 18장의 지도는 대부분 가로 30cm, 세로 80cm 안팎의 크기로 모두 3~5번 정도 차곡차곡 접혀 보관돼 있다. 지역은 부산, 동래, 기장은 물론이고 물금, 양산, 언양, 밀양, 울산, 마산, 경주, 대구를 담고 있을 정도로 방대하다.

무엇보다 두 첩 내 지도 18장에는 일반 지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특이한 사항이 기재돼 있다. 이를테면 마을 가구 수, 인구, 가축(소) 수, 도로 폭, 도로 경사는 물론이고 길이 자갈밭인지 모래밭인지, 비가 왔을 때 어디가 잠기는지, 말이 다닐 수 있는지, 사찰에는 승려가 몇 명이 있는지 등도 상세하게 표시돼 있다.

별도 지도 5장은 제작자가 세키네 쇼헤이로 되어 있는 ‘한국부산항지도’(1901, 1만 분의 1)와 ‘부산항지도’(1901, 20만 분의 1), 당시 왜관 서편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제목이 없는 지도’ 한 장(1901 추정, 5000분의 1), 그리고 제작자 표시가 없는 ‘조선부산일본거류지’(1901, 2500분의 1)와 ‘부산일본거류지’(1900, 5000분의 1)이다. 이 중 ‘조선부산일본거류지’와 ‘부산일본거류지’는 모두 용두산을 중심으로 당시 일본인 거주지를 복사하듯 그려 놓고 있어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부산일본거류지’에는 도로 곳곳에 붉은 점으로 수도(水道)가 선명하게 표시돼 있다.

국립해양박물관 이경희 유물관리팀장은 “이를 통해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사전에 우리 국토를 얼마만큼 정밀하게 관찰했는지 알 수 있다”면서 “이는 일본의 군사보고용 지도로, 그들의 철저한 계획과 야욕을 지도를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다”고 말했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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