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차 한잔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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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지정지호(至精至好) 차불사(且不奢)라. 지극히 정결하고 지극히 좋으며 또한 사치하지 아니하여야 하니라.” 다도(茶道)를 말하는 데 금당 최규용(1903~2002)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차 문화의 길을 내고 국제화에 앞장선 인물이다. 부산에서 차 문화 보급에 매진할 때 송도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금당다우(錦堂茶寓)엔 전국에서 숱한 차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뜨락에 핀 작약도 볼 겸 차 한잔하러 오시게.” 금당 선생은 ‘끽다래(喫茶來)’라는 말도 만들었다. 차와 함께 맑은 삶을 보낸 일생은 수도자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100세를 일기로 작고할 때도 좌탈입망(坐脫入亡·앉은 채로 죽음을 맞음)이었고 몸에서 26과의 사리가 나왔다.

차의 기원은 4~5세기 중국 양쯔강 유역이라고 전해진다. 8세기 중엽 <다경(茶經)>이라는 책이 지어질 무렵 다도가 성립됐다는 게 통설이다. 우리나라에 차가 들어온 것은 신라 시대였다. 부처에게 차를 공양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여럿이다. 고려 시대에는 불교가 국교가 되면서 차 문화가 꽃을 피웠다. 억불의 시대인 조선 시대에는 사찰, 곧 불교를 중심으로 차 문화가 이어지다가 19세기 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에 의해 집대성되기에 이른다. ‘선다일미(禪茶一味)’란 말이 있다. 차와 선은 한 가지란 뜻으로, 차를 끓이고 마시는 일련의 행위가 수행이나 깨달음을 위한 궁극의 지향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부산 동래구에서 청년 다도가를 육성하는 사업이 진행된다는 소식이다. 동래구는 ‘차밭골’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차 문화의 중심지로 통한다. 옛날 금강공원 안에 도자기를 굽는 요(窯)와 차를 만드는 다소(茶所)가 있었고, 금정산 고당봉 금샘에서 발원해 미륵암에 이르는 성스러운 물도 있었다. 차와 물과 그릇이 다 있으니 차의 명당자리임에 틀림없다. 다도 문화의 본고장인 부산이 이런 전통과 환경 아래 시대의 트렌드나 다양한 힐링 콘텐츠와 만나게 된다면 새로운 문화 중심으로 거듭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신을 맑게 하는 찬 한잔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그것은 격식과 겉치레를 뛰어넘는다. 어쩌면 코로나19 시대에 마음을 위로하는 백신이 될 수도 있다. 굳이 여러 사람이 모이지 않아도 된다. 홀로 마시는 차 한잔을 통해 미움과 애착의 마음을 걷어내고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다름 아닌 선다일미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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