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언론 자유 훼손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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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행 동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국제 언론감시단체로서 전 세계 180개국의 언론자유지수 발표로 공신력을 얻고 있는 ‘국경없는기자회’가 지난 7월 언론 탄압과 언론인 살해로 정권을 유지하는 ‘언론 자유 약탈자’ 37명을 발표했다. 명단에는 김정은, 시진핑, 푸틴 등 전체주의 정권의 수장들이 포함되어 있다. 김정은은 ‘감시, 억압, 검열, 선전에 통치 기반을 둔 전체주의 정권의 최고 지도자’라는 지적을 받았고, 시진핑은 ‘권력으로 중국 내 언론을 장악할 뿐만 아니라 권위주의 행태를 다른 나라에도 수출하는, 전 세계 언론의 위협’으로 평가됐다.

권위주의 국가들 비판적 언론 통제 많아
정권 보호 위해 가짜 뉴스 금지법도 제정
민주당 개정안, 감시·비판 기능 위축 우려
팩트체크 강화로 허위·조작 보도 막아야

정보의 생산과 유통의 디지털화로 의사 표현이 촉진되고 정보 소통의 기회가 확장하고 있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에서 국가 권력에 의해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제한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최근 벨라루스 대법원은 1995년 설립되고 1204명의 회원을 보유한 최대 규모의 언론단체인 벨라루스기자협회(BAJ)가 정부로부터 허위 문서 제출 혐의로 고소되자 이 단체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국가안전위원회는 “국가를 정화하기 위한 노력”이라며 “기자협회 회원은 급진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국가의 탄압을 피해 기자협회 집행부는 게오르기아(조지아)로 도피했으며 대변인은 우크라이나로 피신했다. 최근 몇 주 동안 32명이 체포되고 10명 이상이 감금되는 등 언론 탄압으로 벨라루스의 언론 자유 침해 정도는 심각한 상태에 있다.

홍콩에서 민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최후의 보루 중 하나였던 빈과일보(Apple Daily)는 지난 6월 말 중국 당국의 탄압을 견디다 못해 26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폐간되었다. 중국의 천안문광장 민주화 운동 후 홍콩으로 이주한 기업인 출신인 지미 라이가 설립한 빈과일보는 중국 정부의 권위주의적 정책들을 비판하는 사설과 정부 선전 매체와 상반되는 정보를 게재해 온 반중 매체로서 중국 정부와 친중 진영으로부터 고초를 겪어 왔다. 홍콩 경찰은 지난해 제정된 홍콩보안법에 따라 최고 종신형에 처할 수 있는 ‘외세 결탁’ 혐의를 씌워 2019년 홍콩 언론인권상 수상자 지미 라이를 포함한 빈과일보 임원진을 체포하는 등 압력을 지속해 왔다. 지미 라이는 2020년 12월 국경없는기자회로부터 ‘언론자유상’을 수상했으나, 홍콩보안법에 따라 편집국에 경찰이 진입하고 직원들이 체포되면서 결국 폐간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와 함께 최근 들어 전 세계 권위주의 정권들에서 ‘가짜 뉴스 방지법’을 제정하여 언론 통제를 시도하는 사례가 자주 보고된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창궐한 지난 한 해 동안만 해도 전 세계 17개국이 가짜 뉴스 금지법을 통과시킨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들 중 많은 국가가 코로나19와 관련된 허위 사실 유포를 막겠다는 명분을 들어 해당 법을 도입한 후 정권을 보호하고 반정부 인사들과 비판적 언론을 통제하는 데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가짜 뉴스(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려는 여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가짜 뉴스, 왜곡 보도로 인한 국민의 피해 최소화와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피해 구제’를 입법 취지로 내세우고 있지만, 언론의 감시를 무기력하게 만들려 하는 권력자의 숨은 의도를 의심하는 국내외의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허위·조작 보도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언론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오보 역시 소송과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 체계를 구성하는 주요 하부 체계인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언론을 허위·조작 정보의 주범으로 몰아가는 것은 더없이 위험하다.

가짜 뉴스에 대한 대응책은 언론의 자유가 제한되지 않는 방향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세계 선진국들은 입법을 통한 규제 대신 팩트체크를 강화하고 있고, 미디어 리터러시(읽고 쓰는 능력) 교육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짜 뉴스에 대응하고 있다. 가짜 뉴스를 막으려는 법이 언론의 비판적 보도 기능을 위축시키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며,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면 피해는 민주 시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권력에 대한 언론의 감시 기능이 제약을 받는 나라에서 시민은 국가의 주인이 아니라 도구가 된다.

언론과 국가 권력이 적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때 그 사회는 건전한 민주주의의 토양 위에서 미래지향적으로 성장해 갈 수 있다. “개정안이 그대로 추진된다면 한국 정부는 최악의 권위주의 정권이 될 것”이라는 세계신문협회의 경고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언론 자유를 훼손할 수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으로 선진 대한민국이 권위주의 국가라는 오명을 쓰게 만들어선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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